• 인심 좋은 세상이 좋은 세상이죠. 먹을 것 입을 것이 넉넉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아무 부담 없이 나눠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그게 좋은 세상 아닙니까.

    한 50년 전만 해도 ‘무전여행’이 가능한 지역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시골에 가서 해가 저물어 뉘 집에나 들려 하룻밤 재워달라고 부탁하면 거절하는 주인이 별로 없었습니다. 보리밥이나 조밥 한 그릇에 갓 김치 한 사발뿐이었어도 넉넉히 요기를 채우고 다음 날 새벽에 그 집을 떠나 다음 행선지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세상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 듯합니다. 산간벽지는 몰라도 농촌마저 조국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공짜’가 없습니다. ‘민박’이라고 써 붙인 민가는 여관 못지않게 박합니다. 한 푼이라도 더 손님에게서 뜯어내려는 경향이 농후하여 인심이 후하던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각박한 세상이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인심은 계속 후하고,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칩니다. 예컨대 “어린이들 점심은 몽땅 무상으로 하라!”느니 “대학생들 등록금은 반으로 깎으라!”느니, 매우 듣기 좋은 제안을 남발하는데, “누구 돈으로 그런 엄청난 혜택을 베풀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내 돈으로 하지요”라는 말은 한 번도 오지 않고, “다른 예산을 그리로 빼 돌려요”라고 소리를 지르니,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이 자들은 페스탈로치가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도야’가 전혀 안 돼 있는 것이 분명하지요. 예산 없이는 동전 한 푼의 지출도 집행할 수 없는 이가 행정 책임자인데 어쩌자구 이러는 겁니까. 보기가 하도 민망해서 나도 한 마디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심이 자기들에게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면 유권자들을 너무 모르는 것이죠. ‘민심은 천심’이라는데, 민심을 그렇게 우습게보고 농락하려 드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하루 빨리 제 정신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라움입니다.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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