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을 수록 뜨거운 애국심 생긴다"

    선생님께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독후감 공모전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그때 다른 친구들이 나를 추천하였다. 그래서  마지못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속에 진한 감동과 더불어 뜨거운 애국심이 생기고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승만하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구한말부터 일제시대, 6·25를 거쳐 1965년 하와이 퀸즈 병원에서 생을 마감 할 때까지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우리나라가 오늘날 자유와 변영을 누리게 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의 공로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립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집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손위의 두 형이 죽는 바람에 6대 독자로 자라게 된다.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 승만을 서당에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승만은 천연두에 걸려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일본인 의사에 의해 병을 고치게 되면서 서양 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이 일은 훗날 이승만의 생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승만은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인해 일본과 청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서당 친구인 신긍우의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고 그리고 개화파의 기본이념과 정치적 자유의 개념도 배우게 된다.
    1895년 민비를 살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춘생문 사건으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2년 만에 배재학당을 졸업하면서 협성회를 통해 개화·구국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고 우리나라 또한 일본이  무력으로 주인행세를 하게 되면서 민영환과 한규설은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승만을 하와이를 보내게되고 이승만은 조국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결국 국권을 강탈당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나라를 잃은 것이다. 너무나 부끄럽고 원통한 일이다. 하지만 온 국민이 나라없는 설움을 느끼면서 큰 교훈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나라에 대한 소중함이다.
    이승만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지만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한인 지도자들과 갈등을 겪게된다. 3·1운동이 일어난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1934년 헌신적인 아내 프란체스카 도우너와 결혼을 하게 된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은 전쟁에 개입한다. 1942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다. 그 무렵 연합국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결의하게 되고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방이 되고 이승만은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다. 그러나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다. 국군은 계속해서 밀리다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하고 이승만은 미국의 반대에 도 불구하고 북진을 명령한다.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압록강에 다다를 무렵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6월 24일 소련에서 정전을 제안해오고 그 사이 38선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1953년 7월 10일 휴전회담이 성사되고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도 포를 쏘아서 우리 영토를 파괴하고 인명까지 앗아가고 있다. 미국은 1950년부터 1957년까지 약 11억달러를 지원했고 이승만은 대한중공업을 선두로 전후 복구와 산업 근대화의 시동을 걸게 된다. 이승만의 노력으로 1957년 전후 복구를 완전히 마쳤다. 이승만의 탁월한 추진력을 엿 볼 수 있다.
    1960년 3월15일 정 부통령선거가 실시되고 이승만은 대통령에 당선 되었지만 부정선거에 휘말려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게 된다. 과도정부는 휴양을 위해 하와이에 다녀올 것을 권유했고 이승만 부부는 하와이로 가게 된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결국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서 꿈에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너무나 안까운 일이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너무너무 사랑한 민족 지도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국내 뿐 만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교류가 없었다면 6·25전쟁 때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나라간의 교류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 정착은 문맹률을 줄여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 나는 민주주의의 기초는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의무제도 실시와    문맹퇴치 운동을 벌여 자유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문화적 기반과 국가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승만대통령은 공산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원하는 자유 민주주의자였다. 현재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편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이승만 대통령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분들을 본받아 나라를 사랑하고 애국심을 길러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거나 국력이 약한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 속 깊이 다짐해본다.
    <한예원 /경기 언동초등학교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