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안숙 지음 '선비 안숙일지'
  • 2010년은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이자, 선비 위당 안숙이 자결 보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위당이 순국한 날인 1910년 음력 10월 4일은 양력 11월 1일 토요일이었다.

  • ▲ 선비 안숙 일지ⓒ뉴데일리
    ▲ 선비 안숙 일지ⓒ뉴데일리

    바로 그 순국의 날에 맞추어서 '위당유고'의 전문을 완역한 '선비 안숙일지'가 출간됐다. 원전인 '위당유고'의 영인본을 합쳐 632쪽에 달하는 중량감 나는 책이다.
    안숙은 재야 지식인의 몸으로 나라가 기울어지던 대한제국 말의 암울한 시대를 온 정신으로 부딪치다 온몸을 던져서 순절한 순국선열이다.
    충북 괴산에서 출생한 안숙은 유림선비로 대한제국이 1910년 8월 27일 경술국치를 당하자 민족적 울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동년 10월 4일 향년 48세로 괴산의 오랑강에 투신, 순국했다. 1849년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 직강에 오른 그는 애국 계몽기에 타고난 능력과 지력,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전통학문을 넘어서 새 학문과 해외 유학에 관심을 기울인 동도서기의 실학파 문인이었다. 강렬한 현실비판과 주체의식, 애국 사상을 시무을 통해 설파한 개화 사상가 위당은 1905년 을사늑약에 절통하던 차 민영화이 자결 순국한 소식을 듣자 '절명시'와 같은 제문을 올렸다.
    ''오호라! 사람의 태어남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는데/그 죽음이 진실로 마땅히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을 수 있다면/그 죽음은 도리어 사는 것보다 현명한 것이니 /이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밟고서도/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던 이유인 것이다''
    '절명시'의 이 한 구절은 위당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안숙의 비장하면서도 추상같은 기개와 하늘을 찌르는 격문이 가슴을 울린다.

    그는 실용적 개화파로서 부국강병에도 관심이 많아 네 편의 '병제론'을 남겼다.
    사관 양성론과 용병론 외에 선장병론(善將兵論), 상무론(尙武論) 이 그것인데 일이만(日耳曼) 곧 독일과 보로사왕국(普盧士王國) 곧 프러시아 왕국의 신식 군대 편제와 징모제도를 매우 구체적으로 숫자까지 제시하면서 강병론을 폈다. 또, 로마군 편제와 불랑서(佛郞西) 곧 프랑스군 편제를 인용하고 있어, 위당의 개혁성이 당시로써는 최선봉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위당은 '선비 안숙일지'에 선비로서의 청빈한 삶, 교우의 희노애락, 인간의 연분을 읊고 있다.
    저자 위당의 뛰어난 필체를 동시대의 평자는 이렇게 썼다.

    “충후하며 애달픈 말과 변아(變雅: 쇠퇴한 시대의 시가)에 대한 작자의 뜻이 유래가 있고, 간결 고풍의 온화 윤택한 글과 노두(老杜, 두보)의 시사(詩史)의 규칙이 진실로 거기에 들어 있다.”(344쪽) 그는 매화를 가리켜 “아마 그대 전신은 자(字)가 옥진(玉眞, 당 명황의 귀비) 선녀인가” 했고(135쪽), 대나무를 가리켜 “속 비운 곧은 성질 자연을 품수 받고”라고 묘사한다(135쪽).
    그는 호미를 씻으며 괴산 율리(栗里) 농가의 소박한 삶을 받아들이고, 선비인 매형의 죽음에 눈물로 이별하고, 나뭇잎이 지고 마을 모습 쓸쓸한데 서재에서 조용히 시를 읊고, 대궐이 내린 『규장전운』(규장각이 간행한 운서)에 감격하고, 어머니 은혜를 한 치 풀 같은 아들을 비추는 봄볕 같다고 묘사하고, 가장 친한 벗인 보재(溥齋) 이상설(李相卨)이 문득 그리워 “아름다운 명예를 잘 가지면 청사에 빛나노라” 하고 운을 띄운다.

    삶의 인연과 작별, 슬픔과 탄식의 정감이 위당 시문의 전편에 가득하다.

    '선비 안숙일지'는 위당의 수많은 기(記)와 설(說), 시(詩)와 서(序)를 편집한 '위당유고'의 완역본이다. 위당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충정으로 경세론, 책론, 정기론, 병제론, 상무론, 도덕론 등 33편의 정론을 썼는데 그 문장은 대의명분을 밝혀 세우는 사필의 준엄한 논법이 주를 이룬다. 218편의 절구와 율시는 부패하고 매국하는 권력지배층을 향한 매서운 질타와 왜적에 대한 강렬한 저항 정신이 돋보이는 거대한 서사시다.

    위당의 손자인 기획자 안병찬은 ‘들어가는 말’ 에서 '위당유고'가 100년을 기다린 책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큰아버지 안태식이 위당의 글들을 정리하여 1975년 말에 '위당유고'를 발간한 이후 35년 만에 완역을 하게 되었다고 '들어가는 말'에 그간의 경과를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유고집은 한 가문만의 책일 수 없고 현재를 사는 우리들 모두가 100년의 역사로 읽고 의미를 새기는 춘추서가 될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는다"고 썼다.

    애국은 자기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 뿌리를 수호하며 정체를 유지하려는 강렬한 정신이기에 보편성을 띈다. 선비 안숙은 그런 보편적 가치를 지키고자 목숨을 던졌다.
    위당 순국 100주년을 기념한 '선비 안숙 일지'는 아시아 격동기 속 대한제국의 애국 계몽기에 온몸을 던져 쌓아올린 안숙의 역사적 성실성을 온전히 운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