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목사님 방에 나체 공세...한-미-일인등 포섭대상에 제공외국인 임신공작, 혼혈아로 간첩단 육성...평양엔 현지처 주택촌로버트 박은 미인계 거부해 약물 쓰는 강제 성고문 당한 것
  • “북한의 미인계와 성고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북한의 포섭공작 중 가장 첫 번째가 미인계이다. 성고문은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때 수치감과 모멸감에 스스로 구속되도록 약물과 함께 쓰는 최후의 강제수단이다.”
    탈북시인 장진성씨가 로버트 박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성고문과 미인계 실체를 소개했다.

  • 장씨는 북한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16살 나이들로 김정일의 ‘3천 궁녀’를 뽑는 당조직부 5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 5과에서 1차적으로는 김정일 초대소나 특각 궁녀로 선발되고 거기에서 밀려난 2부류는 대남공작부서 요원들로 선발된다는 것. 그 외 여자들은 당, 군, 외무성 산하 초대소나 총무부 서기실 직원으로 입직된다고 장씨는 말했다.

    장씨는 “그만큼 당 대남공작부서들인 당 작전부, 대외연락부, 35호실, 통전부의 여성요원들은 미모도 미모지만 16살부터 훈련이 잘 돼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한은 이 미인계로 남한은 물론 해외 유명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을 포섭해 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평양시 동대문구역 문수봉 산기슭에 위치한 률동1동에는 ‘현지처 촌’이 있어 이곳에는 홀로 사는 여인들과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단독주책들이 늘어서 있다”고 밝혔다.
    이곳에 사는 대부분 여성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해외 유명인들이라는 것. 이들이 해외유명인의 평양 아내들과 가족들인 셈이라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우대와 관리는 당연히 대남공작부서에서 하고 있다.
    장씨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했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자기 아버지는 일본 사회당 원로 정치인으로 70년대부터 일북 우호 관계의 주역이었다며 자기 어머니는 그 덕에 공화국 영웅이 됐다고 자랑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훗날 통전부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씨받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밝혔다.
    ‘씨받이’란 김정일이 70년대부터 당 대남공작부서들을 관장하면서부터 그가 직접 발기하고 추진한 북한식 혼혈정책을 말한다.

    초기에 북한은 훈련으로는 얻을 수 없는 현지간첩의 완성도를 위해 해당 국가의 아이들을 납치 해 간첩으로 훈련시켜 재파견할 목적으로 이 범죄들을 저질렀다는 것. 그러나 국가충성을 생명으로 하는 간첩용으로서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추가대책이 바로 외형은 외국인이지만 태어나서부터 북한 사람인 “씨받이”였다“고 증언했다.

    북한 대남공작부서들은 흑인, 백인, 아랍인, 동남아인 등 외국 남성들로부터 씨를 받기 위해 많은 여성들을 외국으로 내보내 아이를 낳아오도록 했고, 방북 외국인들을 상대로 임신공작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햇볕정책으로 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통전부의 미인계는 어느 때보다 극대화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통전부에서 근무할 당시 들은 조평통 직원이 목사 한 사람을 포섭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장씨는 “로버트 박의 성고문 증언으로 봐선 통전부가 약물과 함께 강제적인 비열한 수단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를테면 성적인 수치감과 모멸감으로 괴롭히는 정서고문”이라고 말했다.
    (상세내용 아래 기고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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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부처도 입을 열게 하는 북한의 미인계와 성고문  
     햇볕정책으로 남북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통전부의 미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극대화 됐다.

    장진성 (탈북 시인, '내딸을 백원에 팝니다' 저자)  
     
    로버트 박! 그가 자유와 인권을 외치며 북한으로 들어갈 때의 기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때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는 철부지의 오기로 평가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전율을 느꼈고 그래서 그는 이미 순교했다고 찬사의 시를 썼다.  

    북한의 미인계와 성고문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 세계 최고일 것이다. 북한의 포섭공작 중 가장 첫 번째가 미인계이다. 성고문은 미인계가 통하지 않을 때 수치감과 모멸감에 스스로 구속되도록 약물과 함께 쓰는 최후의 강제수단이다.  

    북한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16살 나이들로 김정일의 “3천 궁녀”를 뽑는 당조직부 5과란 것이 있다. 1차적으로는 김정일 초대소나 특각 궁녀로 선발되고 거기에서 밀려난 2부류는 대남공작부서 요원들로 선발된다. 그 외 여자들은 당, 군, 외무성 산하 초대소나 총무부 서기실 직원으로 입직된다.  

    그만큼 당 대남공작부서들인 당작전부, 대외연락부, 35호실, 통전부의 여성요원들은 미모도 미모지만 16살부터 훈련이 잘 돼 있다.

    북한은 이 미인계로 남한은 물론 해외 유명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을 포섭해 왔다. 지금도 평양시 동대문구역 문수봉 산기슭에 위치한 률동1동에는 “현지처 촌”이 있다. 이 “현지처 촌”에는 홀로 사는 여인들과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단독주책들이 늘어서 있다.  

    거기에서 사는 대부분 여성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해외 유명인들이다. 이를테면 평양 아내들과 가족들인 셈이다. 그들에 대한 우대와 관리는 당연히 대남공작부서에서 하고 있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했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조용히 자기 아버지는 일본 사회당 원로 정치인이라고 했다. 70년대부터 日北우호 관계의 주역이었다며 자기 어머니는 그 덕에 공화국 영웅이 됐다고 자랑했다.  

    한번은 그의 친구라는 여자애를 만났던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는 아랍계 여성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그리고 훗날 통전부에서 근무하는 과정에 “씨받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씨받이”란 김정일이 70년대부터 당 대남공작부서들을 관장하면서부터 그가 직접 발기하고 추진한 북한식 혼혈정책이다.  

    일본인 메구미를 납치할 당시 남한에서도 김영남이가 납치 됐다. 초기 북한은 훈련으로는 얻을 수 없는 현지간첩의 완성도를 위해 해당 국가의 아이들을 납치 해 간첩으로 훈련시켜 재 파견할 목적으로 이 범죄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동심이 심히 왜곡된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국가충성을 생명으로 하는 간첩용으로서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고 교육용으로 전환하는데 그쳤다. 그래서 나온 추가대책이 바로 외형은 외국인이지만 태어나서부터 북한 사람인 “씨받이”였다.

    북한 대남공작부서들은 흑인, 백인, 아랍인, 동남아인 등 외국 남성들로부터 씨를 받기 위해 많은 여성들을 외국으로 내보냈고 때로는 방북 외국인들을 상대로 임신공작을 감행했다.  

    몇 십년 만에 북한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제킨슨이 자서전에서 자기가 북한을 탈출하려고 결심하게 된 동기 중 하나가 북한 정권이 백인인 자기 자녀들을 간첩으로 고용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증언한 것도 그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햇볕정책으로 남북민간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통전부의 미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극대화 됐다.

     내가 통전부에서 근무할 당시 조평통 직원 한명이 나에게 목사 한분을 포섭했던 일화를 말해주었다.

    그 목사의 대단한 반공의식과 청렴함이 암초여서 정면방법이 아니라 우회방법으로 포섭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공간인 호텔 안에서 샤워하러 들어가거나 나올 때 양복 입는 사람은 없다.  

    이 점을 이용하여 샤워 하고 나오는 순간에 나체의 여성이 실수인척 방을 잘 못 찾아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그 사진으로 당신 교회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더니 대북지원요구, 자료청탁, 충성강요, 이 세 단계 중 포섭의 첫 단계인 대북지원 요구에 응하더라는 것이다.  

    로버트 박의 성고문 증언으로 봐선 통전부가 약물과 함께 강제적인 비열한 수단을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육체고문이 아니라 수치감과 모멸감으로 괴롭히는 '정서고문'인 것이다. 나는 로버트 박이 죽음인줄 알면서도 그 죽음을 향해 단신으로 들어갔다는 자체가, 그리고 떳떳이 북한의 범죄를 세상에 더 추가 고발한 것만으로도 과히 열혈 남자다운 행동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詩抄 

    로버트 박! 그대에게 

    1. 함박 눈

     

    그대가

    순교의 강기슭에 섰을 때

    하늘땅이 손 맞잡고 막아서며

    하얗게 내렸던 함박 눈

     

    그때 그 함박눈을

    어찌 차디찬 겨울눈이라고 하랴

    얼어붙은 북한 땅을 체온으로 녹이며

    그대가 뜨겁게 흘렸던 기도의 눈물

     

    하여 축복하리라

    굽어 살피리라

    그대의 머리위에 얹으셨던

    예수님의 부드러운 손길

     

    오! 그래서

    그대 품에 원 없이 젖고 싶어서

    희생하는 몸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랑에 간절히 매달렸던

    북한 주민들의 한 맺힌 소원들

     

    2. 외투

     

    얼음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서도

    차마 따뜻하게 갈 수 없노라

    그대가 벗어놓고 간

    강기슭의 외투

     

    헐벗은 동포들을 찾아가는 길이기에

    모진 겨울 함께 하리라

    기어이 덜어놓고 간

    그대의 더운 온기

     

    그대가 남기고 간 그 외투는

    고통 받는 이웃들을 잊지 말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부탁하며 남긴

    풍요의 양심

     

    3. 28살

     

    단일민족 반만년

    그 영광이 무엇이란 말이냐

    독재의 반쪽 땅을 허용하며

    오늘도 우리의 삼천리는

    분단의 반백년을 넘겼는데

     

    아니 우리 7천만이

    이리도 못 났단 말인가

    민족의 이름을 외치며

    십자가를 짊어진 그 순교자가

    아직도 한 생의 반도 못 산

    28살! 28살이 아니었더냐

     

    4. 두만강

     

    북쪽의 두만강은

    대대로 눈물이 흐른 강

    지금은 흘러 갈 자유마저도

    차디찬 독재에 얼어 묶인

    비극의 강

     

    허나 그대가 넘는 순간

    자유의 바다를 알게 된 강

    암초에 부딪치고 부서져도

    사랑으로 이어짐을 믿게 된

    아 성령의 강

     

    5. 자유

     

    그 어느 시인은 노래했더라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수 있다만

    자유를 위해서는

    그 사랑도 바칠 수 있다고

     

    그대는 우리에게 새롭게 깨우쳤노라

    자유를 위해서는

    사랑도 바칠 수 있다만

    더 큰 사랑을 위해서는

    그 자유도 기꺼이 버릴 수 있음을

     

    6. 인권

     

    불쌍한 삶들을 알았을 때부터

    같이 춥고

    함께 굶으며

    살아도 살지 않았던 그대

     

    떠나며 남긴

    마지막 그 한 마디 속에조차

    자기를 구하지 말라며

    목숨마저 남기지 않았던 그대

     

    순교하는 최후의 기도까지

    죽은 자

    산 자들을 위하여

    모두가 돌려주며 일어선 그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

    자기의 인권을 포기한 그대이기에

    우리는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보노라

    참으로 나누어야 할 우리의 인권을!

     

    7. 너를 통해 본 예수님

     

    그런 분이시었구나

    예수님은 눈물이 참 많으신 분이시었구나

    로버트 박! 그래서 그대 또한

    북한 동포의 서러움 모아 쥐고

    기도하며 울고 또 울었었구나.

     

    예수님의 하루는

    인간을 위한 배고픔이셨구나.

    하기에 민족의 젊은이여

    그대도 300만 아사자를 가슴에 묻고

    금식 기도로 청춘을 보냈었구나.

     

    어쩌면 십자가도

    예수님의 속절없는 운명이었구나.

    그 핏줄을 이어받았기에

    총구를 피한 것이 아니라

    기어이 찾아간 그대 아닌가.

     

    아 북한 땅이 너무 모질어

    원망했던 예수님의 사랑인데

    아니었구나. 예수님의 아들인 그대가

    12월 25일이 없는 그 땅에

    12월 25일을 가져갔구나

    (장진성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