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글을 오늘로 888번째 올립니다.
    그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정성껏 글을 써서 올리면 오다가다 내 글이 대통령 눈에 띠어 혹시 국정운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자신은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다 치더라도 청와대에서 밥 먹는 그 많은 식구들 중에 누구라도 내 글을 읽고, ‘이 말은 대통령께 꼭 전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허망한 꿈이 있어서 오늘까지 매일 적어서 올렸습니다.

    나는 888일 날마다 ‘상소문’을 올렸지만 대통령께서 그 중 어느 한 장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왜?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사람들의 명단에 끼어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청와대의 기피인물이 된 것입니다. 예전의 대통령들 중에는, (나와 사상과 이념이 전혀 다른 대통령들이야 물론 날 볼 필요가 없었겠지만) 나를 청와대의 점심에 청해서 단 둘이 앉아 점심을 먹으며 국사를 의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대통령은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두 번이나 청와대에서 독대, 자신의 기쁨과 아픔을 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 은근히 화가 납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처음 점심을 함께 할 때, “지난 번 대선에서 나는 노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고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웃으면서, “그러면 어떻습니까”하였고, 그 다음에 또 초청한 걸 보면 노태우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답장도 없는 사랑의 편지를 888번째 씁니다. 여러 사람들이 나더러 “읽어주지도 않는 편지를 왜 매일 씁니까.” 그럽니다. 나를 매우 어리석은 인간으로, 바보로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쓰다 보니, 대통령은 읽지 않아도 읽어 주는 동포들이 전 세계에 많이 생겨서 이젠 그만둘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쓰고 또 쓸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은퇴하는 날 나도 이 칼럼을 끝낼 겁니다. 80 넘은 노인이 이런 글을 매일 쓴다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이나 한 번 쯤 해주시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여길 것입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