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의 對獨저항과 스웨덴의 굴종 
     
     2차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유럽엔 20개국이 중립국이었으나 끝날 땐 스웨덴, 포르투갈, 스위스 세 나라만 中立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통일과정에서 한국이 韓美동맹을 파기하고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지금부터 등장할 것이다.

    趙甲濟   
     
     1380년 노르웨이는 덴마크 연방에 합병되었다. 1814년 덴마크는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하였다. 1905년 노르웨이는 독립하였다. 王政을 채택한 노르웨이 議會는 덴마크의 王子를 수입, 호콘 7세 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스칸디나비아 3國은 1차 대전 때 중립을 선언, 전쟁을 피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은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점령해버렸다. 스웨덴은 군사력이 만만치 않고 노르웨이 침공 독일군의 領內 통과를 허용하여 침략을 면하였다. 스웨덴은 형제국인 노르웨이가 독일군의 공격을 받을 때 돕지 않았다. 사실상 독일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사람들의 스웨덴에 대한 감정이 지금도 좋지 않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독일군에 점령당한 뒤에도 험준한 산악 지방을 이용, 저항하였다. 王과 정치인들은 영국으로 피신, 亡命정부를 세웠다. 이들은 소규모 해군과 공군을 만들어 영국군을 도왔다.
     
     노르웨이는 지금이나 그때나 세계 최강의 海運國이다. 런던의 망명 노르웨이 정부는 400만t의 상선대, 2만5000명의 선원, 1000척의 선박을 연합국에 제공하였다. 大戰中 영국이 수입한 석유의 半은 노르웨이 상선들이 운반하였다. 전쟁중 노르웨이 선박의 반이 침몰, 2000명의 선원이 죽었다. 1945년 5월, 히틀러가 자살한 뒤 독일군이 항복하자 노르웨이에선 對獨협력자를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노르웨이는 死刑제도를 폐지한 나라였지만 보복처형은 계속되었다.
     
     나라가 생존차원에서 싸울 때는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도 法治가 일시적으로 정지된다는 좋은 사례이다. 對獨협력자에 대한 처벌은 20년간 계속되어 1964년에 끝났다.
     
     2차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유럽엔 20개국이 중립국이었으나 끝날 땐 스웨덴, 포르투갈, 스위스 세 나라만 中立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통일과정에서 한국이 韓美동맹을 파기하고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지금부터 등장할 것이다. 스웨덴처럼 군사적 전통이 강한 나라도 나치 독일 앞에선 굴욕적으로 中立을 지켜야 하였다. 민주주의 국가만이 약한 나라의 중립을 존중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앞으로 200년이 지나도 西歐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어렵다. 상비군 200만 명, GDP의 10%를 국방비로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中立 같은 헛소리는 하는 게 아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