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아버지한테서 우리집 이야기 다 들었지?」

    소주를 한병쯤 마셨을 때 오연희가 정기철에게 물었다. 오연희는 눈 주위만 발그레해졌는데 그것이 더 매혹적이다.

    정기철의 시선을 받은 오연희가 입술을 혀로 적시면서 말을 잇는다.
    「너, 나 사귀려면 미리 알아두는게 좋을 거다. 우리집 여자들은 좀 그게 쎄.」

    정기철은 눈만 껌벅였고 오연희의 말이 이어졌다.
    「음기가 쎄단말야. 쉽게 말하면 색을 너무 밝힌단 말이지.」
    「......」
    「울 엄마가 남자를 넘 밝혀서 탈이 난거야. 그래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됐어.」
    「......」
    「울 아빠가 오빠 면회가기 쉽게 대전 근방에서 벽지 바른다는 얘기 들었지?」
    「......」
    「나도 색을 넘 밝히는 것 같어.」
    하고 오연희가 제 잔에 소주를 따랐을 때 정기철이 말했다.
    「너무 신경쓰지 마. 어른들은 다 자기 앞가림은 할테니까.」

    술잔을 들어올리던 오연희가 움직임을 멈추고 빤히 시선만 준다. 정기철이 물잔의 물을 비우더니 거기에다 소주를 부었다. 그리고는 냉수 마시듯이 벌컥이며 삼켰다.

    「우리가 신경을 쓰면 쓸수록 일이 더 꼬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어.」
    물잔을 내려놓은 정기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오연희를 보았다.

    「특히 부모하고 자식 관계 간에 말야.」
    정기철이 술병을 들었다가 내려놓고는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술병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종업원에게 소주 세병을 더 시킨 정기철이 오연희를 보았다.
    「누나, 걍 모른척 해. 두분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말야.」

    오연희는 이제 입만 꾹 다물고 있다. 술잔도 내려놓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 생각이 난건데 자식한테 존경받는 부모는 드문 것 같어. 다 그럭저럭 사는거야. 걍 넘어가 주자고.」
    「넌 그럴 수 있을 것 같니?」

    불쑥 오연희가 묻자 정기철은 쓴웃음을 짓는다.
    「나도 몇시간 전에 아버지한테 집 나가라고 해놓고 나온 거야. 아버지가 회사 망하고 나서 3년간 술만 마시고 폐인이 되어 있거든. 엄마가 남의 집 입주 가정부로 들어가 우리 남매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도 말야.」
    「......」
    「그런 엄마한테 이혼하자고 했대. 자존심이 상했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난 화가 나서 아버지한테 집 나가라고 해놓고 나온 거야.」
    「......」
    「내가 15일간 벽지 바르고 모은 돈 2백을 주고 나왔어. 나가라고. 이혼이고 좃이고 그딴게 뭔 필요가 있냐? 나가서 사라지면 되는게 아니냐고 했어.」

    그 사이에 종업원이 놓고 간 술병 하나를 쥔 정기철이 다시 물잔에 콸콸 따랐다. 그리고는 갈증이 난 것처럼 물잔을 비우고 나서 손등으로 입을 씻었다.

    「근데 지금 누나 말 들으면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분수 모르고 까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그래서 그렇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릴 한건데.」
    「술 그만 마셔.」
    다시 물잔을 채우려는 정기철의 팔을 잡으면서 오연희가 말했다.
    「너, 휴가 며칠 남았니?」
    「세 밤만 자면 귀대야.」
    「그럼 나하고 여행가자.」
    오연희가 똑바로 시선을 준 채로 말한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