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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화한테서 받은 열쇠로 문을 연 순간 정기철은 악취로 이맛살을 찌푸렸다.
현관에는 소주병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는데 주방에는 개숫대에 그릇과 음식 찌꺼기가 잔뜩 쌓여졌다.「아빠.」
가방을 내려놓은 정기철이 불렀지만 집안은 조용했다.안쪽 방문을 연 정기철은 방바닥에 널부러진 정수용을 보았다. 반바지에 더러운 셔츠 차림으로 정수용은 온몸이 내팽개쳐진 자세로 쓰러져 잔다. 뱃살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 한 정기철이 몸을 돌렸다.
3년 전, 부도가 나기 전에도 아버지는 회사 일에만 매달려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공장에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야근을 한데다 새벽에 나갔다가 늦은 밤에 퇴근해서 얼굴 마주치는 날이 드물었다.
회사일 밖에 모르던 정수용이 20년을 재직했던 회사가 분해되자 공황 상태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제복을 벗은 정기철이 츄리닝으로 갈아입고는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먼저 술병과 쓰레기들을 모아 세 번에 걸쳐 쓰레기장에 갖다 버린 다음 설거지를 했다.
어머니는 주인 집 일이 바빠서 두 달동안 집에 오지 못했다고 했다.아버지한테 생활비로 한 달에 50만원씩을 보냈고 동생 정민화도 20만원씩을 보내왔으니 칠십만원이면 호강은 못해도 그럭저럭 산다.
그릇을 다 씻고 냉장고 안까지 청소하고 나서 걸레를 빨아 거실과 주방을 닦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일을 시작한 지 두 시간은 되었다.
「너, 기철이 아니냐?」
머리를 돌린 정기철은 휘청거리며 서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텁수룩하게 수염이 자란 얼굴에 두 눈이 쾡했다. 그러나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아빠.」
몸을 일으킨 정기철이 바지를 걷어올린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절도있게 경례를 했다.
「충성!」「언제왔냐?」
경례는 본척도 않고 아버지가 묻더니 건들거리면서 거실의 낡은 소파로 다가가 앉는다.
「휴가 온거냐?」
「응, 아빠. 지금도 술 많이 마셔?」
다시 엎드린 정기철이 주방을 닦으면서 물었다.정수용이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나면 같이 있으려고 노력해 주었다. 중학교때는 원격조정 로봇을 다섯시간동안 같이 조림 한 적도 있다.
정수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걸레질을 마친 정기철이 소파를 보았더니 정수용은 다시 늘어져 잠이 들었다. 그래서 정기철은 저녁 준비를 했다.
냉장고가 텅 비어져 있었으므로 수퍼에 가서 찬거리를 샀고 잠깐 망설이다가 소주도 세병 넣었다. 그래서 정기철이 저녁 준비를 다 마쳤을 때는 오후 8시 반이 되어 있었다.
「아빠, 식사.」
정기철이 부르자 그때까지 죽은 듯 누워있던 정수용이 상반신을 일으켰다.그러더니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 헛구역질 소리만 여러 번 뱉던 정수용이 누렇게 굳어진 얼굴로 나왔다.
「술 있냐?」
하고 정수용이 물었으므로 정기철이 다부지게 대답했다.
「밥 먹고 마셔.」
「술 내놔라.」
「안돼.」
뱉듯이 말한 정기철이 정수용을 똑바로 보았다.「시발, 어지간히 엄살떨어. 내 아빠처럼 굴란 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