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쇄신 주도 김성식, 정태근 의원은 누구?  
     제헌의회 그룹 사건 연루....美문화원 점거사건으로 복역 
     

     자격 없는 이들의 비판은 거북스럽다. 천안함 사건 관련 국군 지휘부와 6·2선거 이후 한나라당에 대한 內部(내부) 규탄을 편하게 듣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국군 지휘부와 한나라당의 시시비비를 떠나 자격 있는 이들의 공정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는가?

  • ▲ 김성식(왼쪽) 정태근 의원.
    ▲ 김성식(왼쪽) 정태근 의원.


     
     아래는 한나라당 쇄신을 주도하는 金成植(김성식), 鄭泰根(정태근) 의원에 대한 자료이다. 이들은 김학용 의원과 함께 10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당 쇄신을 위한 초선의원 모임을 공식적으로 발족하게 될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아래 자료는 앞으로 이뤄질 한나라당 쇄신의 미래를 짐작케 해준다.
     
     <제헌의회 그룹 사건 연루, 金成植 의원>
     
     金成植(김성식), 鄭泰根(정태근) 의원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핵심참모로 일했으며 李대통령의 핵심측근으로 분류돼왔다.
     
     金의원은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78년 「유신철폐시위」에 이어 1986년 「제헌의회 그룹(CA : Constituent Assembly)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CA그룹은 한국사회를 「제국주의의 新식민지」로 간주하면서 『파쇼 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한 左派혁명 단체였다.
     
     金의원은 출소 후 전국화학勞組(노조) 기획부장과 민주당 동대문乙지구당위원장을 거쳐 2000년 한나라당 서울관악甲지구당 위원장으로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4년 총선에 떨어진 후에는 손학규 前경기지사를 보필하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동했고, 孫 前지사 탈당 후에는 MB캠프에 발탁됐다.
     
     金의원은 정무부지사 시절, 『손학규의 「복심」』으로 통했다. 그는 부시장 발탁 당시인 2004년 5월9일 <시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孫지사와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한 개인적 인연이 있었고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이』라고 말했었다.
     
     金의원은 부시장 시절 평양을 왕래하며, 소위 「북한 농촌현대화 사업」 등 경기도의 對北지원 사업을 주도해왔다.
     
     金의원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KSOI 출신들은 2007년 대선 당시 左派캠프에 대거 진출해있다. KSOI 소장·副소장·수석전문위원·기획위원 출신인 김헌태·정기남·정창교·문명학氏는 각각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 권영길 후보 정무특보를 맡고 있다. KSOI 출신이 주요 후보 책사 노릇을 도맡고 있어서, 정치권에서는 『K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었다.
     
     <美문화원 점거사건으로 복역한 鄭泰根 의원>
     
     鄭泰根(정태근) 의원은 대선 당시 중앙선대위 유세수행단장을 맡았었다. 그는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서 「三民鬪(삼민투)」 활동을 벌이다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鄭의원은 출소 후 親北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99년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99년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2006년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鄭의원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들을 대거 영입할 때 元喜龍(원희룡)·高鎭和(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李明博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李明博 사람」이 됐다. 부인 한신자(43·이즈피엠피 부사장)氏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