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선거, 야권은 왜 실패하고 있나?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서만 보면 지방선거는 당연히 자치단체의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이미 그런 형식적 의미를 넘어서는 중대한 정치적 함의를 갖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바란 것은 사실 야당들이 먼저였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이른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중앙 정치적 선거로 몰아가고 싶어 했다. 반면 여당은 그 본래 취지대로 의미를 제한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여당의 이런 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이었을 뿐 가능하지 않은 희망사항이었다.

    중앙 정치적 함의를 갖지 않는 선거란 애초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전국적 차원에서 대규모로 동시에 치러지는 선거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총선에 못지않은 선거임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야권의 계산착오, 정권심판론은 처음부터 실수였다

    문제는 야당들의 바람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상황이 그들의 계산대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초점을 잘못 잡은 탓이 컸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든 국정지지도가 계속 50%대를 육박하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 정치의 전례에 비추어 보면 대단히 드문 상황이었다. 집권 중반기에 이런 지지도를 안정적으로 계속 유지한 경우는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정권심판론에 매달리는 것은 스스로를 일단 그 이하의 틀로 가두기를 자청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여당 內 일부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른바 反MB 정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중간평가 중간심판이라는 프레임을 정도 이상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 우려는 결국 자기 확신의 부족 이상이 아니었다. 야당들의 정권심판론이 역으로 여당에 기본 50%대의 지지기반을 오히려 사전 승인해주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하나의 실수, 실패한 과거에 기대기

    야당들의 또 다른 실수는 사실 잘못 끼운 첫 단추의 연장이었다. 그들은 전례 없는 지지도의 정권에 정권심판론을 내세운데 이어 자기들끼리의 ‘코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노무현 코드다. 물론 결과적으로 친노 세력이 야권 전반을 사실상 안팎에서 접수하는 그들끼리의 성과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을 더욱 좁은 프레임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하는 실수가 되었다.

    그들은 과거의 추억을 팔아 현재의 정치적 이득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두 가지에 문제가 있었다. 첫째 그 추억이 자신들에겐 애틋할지 모르나 국민 대다수의 입장에선 인간적 추모와는 별도로 정치적 평가에선 결국 ‘실패’라는 단어로 기억되고 있음을 간과했다. 둘째 미래지향적 이미지의 부재였다. 그들은 정권에 사사건건 반대를 하고 과거의 코드를 파는 데는 몰두했지만 정작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는 결국 비전을 파는 비즈니스, 그런데 비전제시에 실패했다

    정치는 결국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비전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는 어떤 점에선 비전을 생산 판매하는 일종의 콘텐츠 비즈니스에 다름 아니다. 물론 단지 비판자 반대자라는 정도만으로도 일정한 정치적 영역을 확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안세력이 되려면 말 그대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를 향한 비전이 바로 그 대안임은 반복할 필요가 없는 얘기다.

    이른바 군부독재 정권 시절 반독재 민주화도 말하자면 하나의 미래 비전이었다. 민주화된 사회와 국가라는 비전을 열렬히 제시했고 그것이 국민 다수에 받아들여지면서 민주화 투쟁 세력이 대안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야당들은 어느 순간 이 점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들은 현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이고 이명박 정권을 독재 정권이라 규정짓기까지 했다. 하지만 야당들의 이런 주장은 국민 대다수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한민국은 어떤 점에선 지나치다 할 만큼 충분히 민주화됐다는 게 內外 일반의 상식이다. 당연히 ‘민주’ 운운을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야당들은 여전히 자신을 민주 세력으로 반대편을 反민주 세력으로 규정짓는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좌파를 자임하다

    물론 야당들은 민주를 넘어 나름대로 새로운 비전을 들고는 나왔다. 이른바 ‘진보’다. 어느 순간부터 야권의 모든 세력들은 진보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언론도 보수 대 진보라는 용어를 쓰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지금 지방선거에서도 보수후보, 진보후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구도는 야권의 바람이 어떻든 그들의 비전이 아니라 단지 좌파적 속성을 자기 폭로하는 것 이상일 수 없었다.

    진보라는 용어 자체는 당연히 미래지향적인 뜻을 갖는다. 하지만 본래 뜻이 무엇이든 다수 국민은 그들의 기치에서 미래지향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국민들은 진보라는 단어를 그냥 좌파라는 뜻으로 이해할 따름이다.

    용어도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용어가 아니라 실내용이 가장 중요하다. 간판을 어떻게 내걸고 포장을 어떻게 해도 그 알맹이에 미래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처음에 잠깐은 몰라도 계속 말장난의 포장으로 재미를 볼 수는 없는 게 정치다.

    범여권, 중도실용과 정통우파의 연합구도가 형성되다

    야권이 이처럼 과거지향에 더해 좌파라는 좁은 틀에 스스로 갇혀 버린 반면 여권은 결과적으로 제법 현명한 방향을 잡은 셈이 되었다. 우선 이명박 정권의 중도실용이다. 이것은 어떻든 범여권 전체의 스탠스를 대폭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강경한 보수우파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중도실용은 대단히 기회주의적이고 무원칙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그런 문제점이 있음은 분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때로 적잖이 불투명하고 무원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야권이 자신의 폭을 계속 좁혀간 것과 비교해 보면 결과적으로는 범여 세력의 영역을 크게 넓힌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것은 당초의 의도와는 별도의 문제다.

    정통적인 보수우파 세력은 이명박 정부의 기회주의적 노선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여전히 현 정권을 지탱하는 주요 기반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중도실용의 영역 확장이 더해졌다. 범여라는 차원에서 결코 나쁘지 않았다.

    정통우파가 때로 이명박 정권의 무원칙함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정권에 부담처럼 보였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 비판은 정권에게 일종의 ‘정치적 알리바이’가 되면서 정치적 선택폭을 더욱 폭 넓고 유연하게 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정통우파세력도 과거와는 달리 이른바 ‘어용’이라는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본래 기치를 더욱 선명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 정통우파와 중도실용은 일종의 연합형태로 좌파를 총공격하는 전열을 갖춘 셈이 되었다.

    이명박 정권, 미래지향을 자기 것으로 하다

    한편 야권이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하는데 소홀히 하면서 미래지향적 이미지는 자연스레 여권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여권 스스로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주로는 야권의 바보짓으로 인한 반사이익의 측면이 컸다. 야권의 대여비판은 아무리 거세도 그 내용은 단지 과거의 고수에 지나지 않았다. 자연 여권의 대응논리는 항상 미래를 명분으로 하게 되었다.

    예컨대 ‘세종시 원안 고수’에 대해서도, ‘4대강 사업 반대’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일관되게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세웠다. 그 시비곡절을 떠나 야권은 과거를 지키자고 한 셈이고 여권은 미래를 열자고 한 셈이었다. 단어의 원 뜻에 따르자면 야권을 보수요 여권이 당연히 진보였다. 물론 좀 신랄하게 말하자면 야권 식의 ‘지킴’은 수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명박 정권의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가 보태졌다. 야권은 지방적 문제로 건건이 발목을 잡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한국이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벗어나게 했을 뿐 아니라 원전 사업 수주 등 두드러진 성과를 계속 냈다. 야권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크게 들리긴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너무 비교가 됐다.

    천안함 사건, 친북 좌파를 드러내다

    끝으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바로 야권 전반에 팽배한 친북 좌파적 경향이다. 사실 앞서 열거한 그 어떤 문제보다 이 점이 가장 결정적이다. 야권의 이러한 문제점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과거 정권 시절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그들의 문제적 경향도 단지 대북정책에 대한 다소의 차이로 주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대화, 교류, 화해, 협력 그리고 평화 운운, 이런 식의 논법으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을 호전적 강경책이라 비난하고 있었다.

    당연히 어불성설의 주장이지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만사 온건함을 희구하는 중간층의 정서에는 야권의 주장이 어느 정도는 먹히고 있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이 그 모든 허구를 날려버렸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야권의 입장에선 천안함 사건이 대단히 원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그 자체로 정치적 타격을 주는 법은 없다. 간단히 말해 언제나 하기 나름이다. 문제는 야권 전반에 팽배한 친북 좌파적 정서가 그런 현명한 대응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다는 데 있었다. 이런 경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중증이었다. 천안함 사건은 야권 전반에 팽배한 이런 중증질환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계기였을 따름이다.

    야당들은 천안함 사건 초부터 모든 것이 명백해진 지금까지 일관되게 우리 정부와 군을 의심하고 북한을 비호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 점에 관한 한 민노당, 진보신당 등 정통 좌파를 자임하는 쪽이나 친노 좌파의 참여당 그리고 민주당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차이도 없다. 그들은 지금 북한과 똑 같이 한 목소리로 전쟁을 협박하고 있다. 이것은 한 마디로 그 본색의 자기폭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같은 자기폭로는 누가 주문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좌우 대결, 그것도 친북좌파와의 싸움이다

    이번 선거는 좌우의 대결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이 점은 이제 여야 양 쪽 모두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봤자 소용도 없다. 국민은 이제 그 점 다 안다. 남은 것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좌우 대결이 그냥 좌우대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좌파는 그냥 좌파가 아니라 대다수가 친북좌파다. 만약 일반적 의미에서의 좌파이기만 하면 문제는 좀 다르다. 어느 나라에나 좌파는 있는 것이고 헌법적 틀 안에만 있어 준다면 일단 정중히 상대할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친북 좌파는 우리의 헌법적 틀이 인내할 수 있는 범위의 바깥으로 나가 있다. 사실상 이것은 그 자체로 안보 문제에 다름 아니다. 즉 친북좌파와의 싸움은 단순한 좌우대결을 넘어 우리의 안보를 내부에서 위협하는 세력과 싸우는 문제인 것이다.

    안보문제가 이미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본래 형식에 어울리지 않게 가장 최상위의 이슈로 자리 잡았다. 이 문제가 이처럼 중요한 전면적인 정치적 이슈가 된 선거는 1987년 대선이래 처음이다. 이것은 과거 선거에서 때로 있었던 북풍 운운의 시비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북풍 활용에 나선 쪽은 북한과 한 목소리로 전쟁을 협박하는 친북 좌파세력들이지 여당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이들과 싸우고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우리의 안보를 위한 투쟁이다.

    앞으로 안보문제가 전면적으로 자리 잡는다

    아마 2010년 3월 26일은 우리 정치사에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1987년 이래 한국의 대부분의 선거에선 민주와 경제라는 두 가지가 가장 상위의 이슈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화 하자면 지금의 야권세력들은 주로 민주를 외쳤고 여권 세력은 주로 경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 안보 문제가 그 두 가지와 동일한 비중으로,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슈로 올라선 상황을 맞이했다.

    민주 경제 이에 더해 안보, 이제 세 가지는 앞으로 한국의 전국적 비중의 선거에서 언제나 거의 같은 무게를 갖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어쩌면 민주가 현실적 힘을 갖는 이슈에서 탈락하고 경제와 안보라는 두 가지가 국가적 이슈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

    좌파들의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국은 민주가 긴급한 전면적 이슈가 될 만큼 비민주적인 나라가 결코 아니다. 그 점 아마 앞으로도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보 문제는 아니다. 안보문제는 이제 국민 대중의 시야에서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안보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개인이든 당이든 국민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 보아도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기류는 아마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에필로그 혹은 프롤로그

    선거운동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내일 투표가 끝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예측대로일 수도 뜻밖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진짜 싸움은 사실 내일 투표결과가 나온 뒤부터 시작된다.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큰 의미는 친북좌파와의 싸움이 노골적으로 전면화 됐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과 反대한민국의 싸움이다. 대한민국 세력이 싸움을 먼저 건 것은 아니다. 북쪽의 도발자들이 대한민국을 공격하고 내부의 反대한민국 세력이 스스로 자기 정체를 드러내면서 싸움을 걸어왔다. 물러설 수도 물러설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