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시위 이세진, 그는 지금도 고집한다.  
     
     이세진은 1인시위 때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고집했다.  
    촛불시위자들의 말대로라면 그는 지금 1인시위 보상을 톡톡히 누려야 한다.
    그러나 그날의 영웅은 오히려 지금 너무도 소심하게 살고 있다.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데 쓰여야지 제 집을 태우는데 쓰여선 안 됩니다.”
    광화문 거리를 점거했던 65만이란 거대한 촛불을 순간에 어둠으로 만들었던 이 유명한 말의 주인공은 당시 촛불반대 1인시위를 했던 한양대 안산 캠퍼스 신문방송학과 25세 대학생 이세진씨다. 

    그때 그를 에워쌌던 폭력적인 촛불시위자들은 피켓을 빼앗아 찢고 물병과 빵을 던지다 못해 심지어 발길질까지 해가며 이런 야유들을 퍼부었다.
    “너 한나라당 알바지?”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렸지?” “너 졸업 할 때여서 취업 하려고 그러냐!” 

    외로운 정의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하늘만 우러르며 눈물을 줄 줄 흘렸다.
    1인시위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보고 나왔다. 북한 동포는 굶어죽는데 너무 양심들이 없다. 아니 이 광우병은 반미가 만든 광우병이다.”고 대답했던 이세진, 그것이 인연 되어 나는 오늘까지도 그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촛불시위자들의 말대로라면 그는 지금 1인시위 보상을 톡톡히 누려야 한다.
    취직은 물론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라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그날의 영웅은 오히려 지금 너무도 소심하게 살고 있다.
    그를 따라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어서며 촛불이 꺼지자 수많은 시민들과 단체들이 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때로는 작은 정성의 선물이라도 전달하고 싶어 했지만 그는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했다.
    애국적 행동에는 응당한 보답이 있어야 한다며 많은 기업들이 취직 문을 열고 기다렸지만 제 능력으로 직장을 얻겠다며 차라리 편의점 알바를 선택했다. 

    정치단체에서 명예회원으로 추천하려고 하면 자기를 이용하려 하지 말라 했고, 보수 언론사에서 관심을 보이면 자기의 1인시위를 오해받게 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처럼 이세진은 1인시위 때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고집했다. 

    어쩌면 그는 우도, 좌도 아닌 제 양심에만 충실했던 대한민국 평범한 청년이었고, 그래서 더 소신껏 1인시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 평범함은  딱히 할 일 없는 무료함을 애국으로 둔갑시켜 빨갛게 흥분하는 직업적 데모꾼들에겐 전혀 없는 것이다. 

    무능력한 자기 불만을 국가 불만으로 화풀이 하는 좌파적 비관주의 사고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대중의 광란에 동원되어 생에 없던 성숙함에 희열을 느끼는 기회주의자들 또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시장국가에 적응하는 평범함이란 정직이고 순수함이며 근면이다.
    그것은 일상이며 습관이며 숙련이지 반항과 저주와 공포를 즐기는 자들에겐 좀처럼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골수 좌파들은 꼭 광장에만 산다. 홀로 서면 형편없는 인생인 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반드시 떼 지어 모이는 것이다. 조용하면 존재감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목청껏 외친다. 무엇이든 때리고 부시지 않으면 자기들이 억압받는 줄로 굳게 믿고 폭력을 일삼는다. 

    그들이 선동하고 전염시킨 것이 광우병이고, 그들이 처음에 들고 마지막까지 들었던 것이 바로 거짓의 촛불시위가 아닌가.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서울광장은 평화롭다. 이 평화가 음지에서 사는 촛불선동세력들에겐 마냥 밉고 질투 날 것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거창하게 민주주의, 통일을 외치며 거짓의 일상을 살았지만 그들에게 대항했던 1인 이세진은 오늘도 소박한 취업의 꿈을 꾸며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