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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왕의 남자' 그리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그의 선택은 또 다시 사극이다.
이준익 감독은 사극을 잘 만드는 나라가 문화 선진국이라 생각한다. 어린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다는 그는 서양의 사극을 보면서 서양 역사와 문화를 배워온 기억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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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익 감독ⓒ 뉴데일리
사극을 만드는 영화 감독으로서 그는 현 시대의 세계 속 한국 사극 영화의 위상은 제로에 가깝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감독은 "세계에서 아시아 사극을 떠올릴 때 대표성을 갖는 나라는 일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세계에서 한국의 사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극이란 장르는 시대와 사회상을 담고 있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는 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바로 사극이다. 이 감독은 자신이 사극에 집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못 박았다.
권력자들의 전쟁 놀음에 희생된 민초의 시선을 담은 '황산벌', 궁으로 들어간 광대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무의식을 담아낸 '왕의 남자'. 그의 사극은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정치 논리에 휘둘려 희생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약자를 전면에 내세워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 왔다. 역사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이준익표 사극’ 이라는 하나의 조류를 만들어낸 이 감독. 그가 '왕의 남자' 이후 5년여 만에 선보이는 세 번째 사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작품이다.
이 감독에게 사극이란 작업 할 수록 어려운 장르다. 사극 작업을 지속할 수록 감독으로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계의 마음이 더 커지기 때문에 '사극의 왕'이란 말 역시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는 "'황산벌'은 시대가 전혀 다르지만, '왕의 남자'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약 백 년 차이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다"라며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걸림돌이 됐다"고 속내를 밝혔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어디를 가도 자꾸만 '왕의 남자'의 영상이 그의 눈 앞에 그려졌다. 황정학과 이몽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길과 광대가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왕의 남자'가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만큼, 또 다시 그들이 이번 영화에서 '왕의 남자 2'의 모습을 찾아낼 것만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통해 관객들의 예측에서는 벗어나돼 기대는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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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뉴데일리
이 감독이 말하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매력은 인물이 보이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왜구의 침입과 지독한 파벌 싸움으로 국운이 기울어가던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검객 황정학(황정민), 왕족 출신의 반란군 이몽학(차승원), 세도가의 서자 견자(백성현), 기생 백지(한지혜). 네 인물은 서로 다른 신분과 입장에 따라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신념이 다른 인간들이 서로 부딪히면 사단이 나게 된다"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 감독은 이 부분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왕의 남자'의 경우 연극이 원작이었다."라며 "연극은 관객들이 한번 보면 지나치게 되지만, 만화는 사라지지 않고 고정된 이미지로 계속 각인돼 있다"라고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 감독 스스로의 머리속에 각인 된 만화의 이미지 였다. 그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그것을 부시고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 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영향력은 배우들에게 맡겼다. 그는 "감독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 스스로가 해석한대로 자신의 역할을 재연해 내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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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뉴데일리
어둡고 억압적인 세상에 치열하게 부딪히며 자신을 둘러싼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이 빚어내는 뜨거운 드라마를 통해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 사랑,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나라의 운명에 등돌린 채 동인, 서인으로 갈라져 당파 싸움만 일삼는 무능한 정권, 그 틈바구니 속에서 좌절된 꿈을 껴안고 살아야만 했던 인물들의 모습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욕망과 갈증을 투영하고 있다.
이 감독이 5년여 간의 기간에 걸쳐 완성한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 중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작업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선 굵은 드라마와 삶의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유며, 인간사의 희비극이 교차하는 대서사극으로 내달 29일 관객들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