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탕탕탕!!”

    춘계 DMZ 표지판 보수작업을 마치고 철수하는 장병들 뒤로 559 GP의 북한군이 일제사격을 가했다.
    기습이었다. 황 대위와 김 하사가 쓰러졌다.

    “사격을 중지하라.” “사격으로 발생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너희들에 있다.”

    마이크 경고방송도 무시한 채 총알은 계속 남으로 날아왔다. 표지판 보수작업은 유엔군사령부 승인을 받은 작업이었다. 북한군에도 사전 통보했다.

    “경고를 무시해? 좋다. 합법적으로 응징해주마.”

    3사단장 박정인 준장은 관측기를 띄웠다. 관측기가 보낸 좌표로 3사단 155밀리 곡사포, 105밀리 곡사포가 불을 뿜었다. 타깃은 북한군 559 GP만이 아니었다. 적의 보병 배치선에도 포탄은 어김없이 날아갔다. 잠시 후 북한군들이 허둥지둥 도주하기 시작했다.

    부상자를 안전지대로 구출했지만 박 사단장은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그날 밤 사단이 보유한 모든 트럭을 라이트를 켠 채 DMZ 남방한계선까지 진출시켰다. 부분적으로 중앙분계선 남단까지 진출한 병력도 있었다.

    북한에서 난리가 났다. 김일성은 즉각 전군비상 및 동원령을 내렸고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았다.

  • ▲ 현역 시절의 박정인 장군. ⓒ 뉴데일리
    ▲ 현역 시절의 박정인 장군. ⓒ 뉴데일리

    이 사건은 1973년 3월 7일 백골부대 3사단에서 일어난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였다. 하지만 이 일로 한 달 뒤인 4월 3일, 박정인 장군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단장직에서 해임됐다. 통쾌하게 북한의 도발에 본때를 보여줬지만 상부에서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그는 이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진통일의 성업을 완수 못하고 국민의 군인으로서 국민에게 죄를 짓고 사단장직을 떠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백골 부대 사단 장병은 나의 의도를 받들어 북진통일의 선봉사단 임무를 기필코 완수할 것을 당부하며 백골 사단의 건승과 장병의 무운장구를 기원한다.”

    이임식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차에서 박 장군의 전속부관 이계복 대위가 울먹이며 말했다.

    “사단장님은 진정으로 패튼 장군을 닮은, 조국을 사랑하는 장군입니다.”

    이 대위는 어디서 구했는지 5성의 별판을 박 장군에게 건넸다.

    “장군님의 별은 하나지만 맥아더 장군의 5성처럼 빛나는 왕별입니다.”

    ‘한국의 패튼’ 박정인 예비역 준장은 지난 4월 27일 재향군인회로부터 ‘향군 대휘장’을 받았다. 육사 6기로 6·25 전쟁에 참전한 그는 1950년 6월과 7월 낙동강 방어전에서 6사단 19연대 작전주임으로 특유의 기지로 수 대의 적 탱크를 포로로 잡아 ‘한국의 패튼’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는 중공군 1차 공세 때 평북 희천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됐다가 탈출해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 360km의 적진을 돌파했다. 그 극한의 탈출 과정에서 원산·평강 일대의 적 방어 배치·보급소 위치를 알아내 폭격하게  했다. 조국과 군 밖에 모르는 강직한 성격. 진급이 늦어 6기생 중 마지막으로 별을 달았지만 그는 가장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진정한 군인’이기도 하다.

  • ▲ 박정인 장군. ⓒ 뉴데일리
    ▲ 박정인 장군. ⓒ 뉴데일리

    6-25참전유공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박 장군은 타고난 무골답게 거구였다.

    “지금 한국은 굶주린 이리 앞에서 한 눈 팔고 있는 살 찐 양입니다.”

    박 장군은 6.25 59주년을 맞는 감회를 이렇게 한 마디로 털어놓았다.

    “좌파 정권 10년은 그렇다고 칩시다. 지금 우리나라 지도층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라를 경영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박 장군은 마치 볼모 잡힌 신세가 된 개성공단 문제나 우리 돈 퍼주어 만든 북한 미사일이며 핵 위협을 보면 피가 끓어오른다고 분노했다.

    “지금 우리는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우리 자신도 모르는, 눈 감고 귀 막은 상태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선 내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판단하고, 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적의 수준도, 우리 수준도 모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적이 남침하면 우리와 미국이 힘을 합쳐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통째로 위협하는 친북, 종북 세력은 어떻게 할 겁니까. 이들이 제멋대로 날뛰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요. 이러다가 나라를 통째로 들어 김정일에게 바치게 생겼습니다.”

    박 장군은 “친북세력에 대해선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이들이 두려워 눈치를 보거나 양보하면 그것은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어요. 그건 놔둔 채 국가보안법 폐지 하라는 것은 김정일에게 항복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박 장군은 일부의 반미(反美) 움직임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우리에게 반미감정은 정책의 한 수단이나 선거 전략으로 부추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일본이나 필리핀, 영국 독일 같이 반미를 외치는 나라들은 북한과 같은 폐쇄공산집단과 붙어 있지도 않아요. 또 김정일 같은 위험인물도 없어요.  북미 간에 평화조약을 맺는다든지 반미 등쌀에 못 이겨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봐요.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의 교활한 공작에 하루아침에 적화되고 말 겁니다.”

    박 장군은 북한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철없는 아이가 아닙니다. 약을 대로 약은 여우같은 놈들입니다. 북한 작태를 벼랑 끝 전술이니 뭐니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길을 잘못 들여놓았기 때문에 저러고 나오는 겁니다. 지난 94년 때 영변에다 그냥 미사일 몇 방만 때려버렸으면 오늘과 같은 핵 위기는 없었을 겁니다.”

    박 장군은 후배 군인들에게도 정신 재무장을 주문했다.

    ‘우리 군이 주적개념을 확립하고 지휘관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반공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좌파 정부 10년간 우리 군의 군인정신은 완전히 무장해제 상태가 됐어요. 적이 확실히 누군지도 모르는 군대가 어떻게 국가와 민족을 책임질 수 있단 말입니까?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우리의 주적은 북괴군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주적개념은 군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도 평소 우리의 적이 누구고 동지가 누군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 박정인 장군의 철모와 군모들. ⓒ 조선일보 DB
    ▲ 박정인 장군의 철모와 군모들. ⓒ 조선일보 DB

    호쾌한 맹장(猛將)이지만 학구적 성품을 갖춰 군사(軍史)에 정통한 박 장군은 ‘우리 군도 전통이 있어야 한다’며 아들·손자를 모두 육사에 보내 3대 무인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장군은 국가안보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하는 박 장군이 한 마디 던졌다.

    “내가 내 맘대로 대포 쐈다고 군대에서 쫓겨났지만, 난 지금도 그때 일을 후회 안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란 강자 앞에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한 교활한 놈들이오. 힘으로 완전히 눌러서 싹 쓸어버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가 당해요.”

    박 장군은 지금도 상대방과 인사를 나눌 때 거수경례를 하며 ‘백골’이라고 힘찬 구호를 외친다.

    모처럼 속 시원해지는 인터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