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2년 지방의 한 녹색도시에 살고 있는 주부 김정은씨(35)는 집안 내 모든 가전기기의 전력 소비량을 점검하고 절약 계획을 세우는 재미에 빠져있다. 과거에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고 나서야 사용량을 알 수 있었지만 이제 실시간 체크가 가능하다. 살고 있는 동네가 지난해부터 지능형 전략망(smart grid) 시범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무엇보다 매달 내는 전기요금이 과거에 비해 뚝 떨어진 것이 김씨를 에너지 절약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소비자 전력관리장치가 알아서 쓰지않는 곳에는 전력을 차단하고 가전제품의 전력 사용을 최적화해주니 편리함도 더해졌다. 일부러 안쓰는 플러그를 뽑기 위해 찾아 다닐 필요가 없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는 태양광과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를 활용해 기계를 돌리면서 쏠쏠한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남편의 전기자동차는 밤에 충전, 낮에 사용한다.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16일 세계 최초로 국가단위의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략망)'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스마트 그리드는 첨단 IT기술을 활용해 공급자, 사용자가 쌍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차세대 전력망을 뜻한다. 이로 인해 가정, 기업 등 소비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약 6%까지 에너지 절감을, 온실가스 배출량은 4.6% 각각 저감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사용자 측면에서 스마트 그리드는 쉽게 말해 집안의 모든 전기기기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계절별, 시간대별 각기 달리 적용되는 전기요금제를 상황에 맞게 이용하면서 그만큼 절감효과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가격이 싼 심야시간에 세탁기가 작동하도록 설정해놓으면 절약과 편의가 동시에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기업에서는 최적의 전력 사용 계획 수립이 가능해지며 마련된 요금제 활용 폭이 넓어진다.

    이에 비해 공급자 측에서는 전력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요금결정이 가능해진다. 또 전력수요가 분산되기 때문에 신규 발전투자 비용(연간 약 1조원)이 절감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바람과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불규칙한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전원에 대한 안정성이 높아진다.

    정부 관계자는 "신재생 전원의 경우 현재 사용량이 적어 불규칙적인 전압이나 전력이 흐르더라도 큰 무리가 없지만 향후 사용률이 높아졌을 때를 대비하는 측면"이라며 "공급자 측에서 실시간 정보를 체크해 풍력, 태양광이 약해지더라도 화력 등 대체 전원을 투입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토록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자동차 생산 라인에 고른 전력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 같은 페인트로 도색하더라도 색상이 달리 나올 수 있다. 이처럼 일정한 전력 공급이 생산 현장에 필수적 요소라는 점에서 미래 신재생 전원을 많이 사용하더라도 전력의 고품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한전의 전력망 센서 기술이 갖춰지는 2011년 시범도시를 지정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전력망이 복잡한 대도시보다는 이른바 '녹색도시'를 새롭게 조성, 주거 형태나 교통 등 생활 전반에 녹색설비를 갖춘 도시에 시범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시범도시 운영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에너지 절약 효과가 드러나고, 이에 따른 국민적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미국, 호주 등 선진 8개국이 스마트 그리드를 추진하고 있다. 녹색성장위원회 도경환 국장은 "몇개 국가에서 개발하고 있지만 구체적 모델이 될 만한 사례는 아직 없다"며 "미국의 경우 지난 2000년 캘리포니아주 대정전 사고로 도입의 절실함을 느껴 민간이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정부가 법적,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녹색뉴딜정책 핵심이 바로 스마트 그리드로 더욱 탄력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처럼 스마트 그리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가 없어 기술을 선점한다면 세계시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기반기술에서 앞서 있지만 우리가 IT 강점을 살린다면 충분히 역전 가능하다"며 "정부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개발 속도를 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10년 지능형 전력망 촉진법을 제정하고 2011년에는 소비자 전력관리장치 상용화,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 시범도시 운영을 거쳐 2020년에는 소비자측 지능화를 완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 2030년에는 세계 최초로 국가단위 지능형 전력망 구축을 완성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초고속 인터넷망이 구축돼있으며 조밀한 국토와 단일회사 송배전 시스템 측면에서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