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전대미문의 궤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고위 공직자나 권력층의 빗나간 현실 인식, 무능한 판단력, 독선과 아집 등이 초래하는 정책 오류는 남의 집 담을 넘어가 물건을 훔치는 단순 절도보다 훨씬 더 큰 죄악일 수 있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그 폐해가 더 광범위하고 장기적이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이념으로 무장한 집단이나 세력이 조직적·체계적으로 주도면밀하게 펴는 정책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히틀러 치하 독일의 나치즘, 옛 소련의 스탈린주의,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주의 등에 따른 인권 유린의 폭압 정책들은 극단적 사례다.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 스탈린, 김일성·김정일 부자 등은 물론 그들을 각각 정점으로 한 소수 권력층은 세계 역사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정당화의 궤변을 앞세워왔다. 심지어 나치 독일의 핵심 권력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름까지 바꿔 15년간 숨어살다 체포돼 1962년에 처형되기 전에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만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에 불과하다”는 궤변까지 남겨 인간이 맹목적 이념의 독성에 얼마나 이성을 잃을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이처럼 빗나간 이념의 독성과 그에 따른 정책 등은 폐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이게 마련이다. 교육 이념과 정책은 더 그렇다. 국민 개개인과 사회 전체의 현재는 물론 미래도 좌우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교육 정책 방향과 함께 학교 현장에서 교권을 현실적으로 행사하는 교사들의 교육관부터 건강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잖으면 학생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교육 전반의 현재와 미래가 위기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은 어떤가.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시대착오적인 좌파 이념과 궤변이, 그것도 일선 교사들 사이에 횡행하면서 반(反)교육적 독성을 확산시키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일컬어지는 과거 정권의 평등지상주의 이념에 여전히 집착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오도하는 릴레이 1인 시위까지 동원해 그 가치관과 세계관을 오염시켜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초·중·고등학교 학생에 대한 전국 단위의 학력평가마저 경쟁과 함께 죄악시하며 거부하라고 학부모와 학생을 선동해온 교사들의 행태도 비근한 예다.

    전국 단위든, 교육청 단위든, 학교 단위든 학력평가는 교육의 핵심 과정이다. 학생의 학업 경쟁과 학교·교사의 잘 가르치기 경쟁 결과를 나타내는 성적의 우열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학생 간에, 학교 간에, 지역 간에 서로 앞서기 위한 경쟁이 전체의 경쟁력을 키운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전국 단위 학력평가가 ‘줄세우기’와 ‘경쟁 부추기기’여서 거부해야 하는 것이라면 학교 단위 학력평가도 거부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결국 전국 단위 학력평가 거부는 일체의 학력평가 자체를 학교에서 완전히 없애고, 학생 간의 성적 우열을 따지는 일은 금기시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제비뽑기를 하면 된다는 식이니, 전대미문의 평등지상주의 교육 이념의 극단화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반교육적 일탈을 참교육이라고까지 강변하는 것보다 더한 궤변이 달리 더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중·고등학생들의 학력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성적 순에 따라 현금을 주는 제도까지 보편화해 가고 있다고 한다. 20개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수학·영어·과학·사회·체육 등에 대한 학력평가를 5주마다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최고 50달러까지 주는 시카고 지역을 비롯해 현금 지급을 통한 학습 경쟁 동기 부여 제도가 앨라배마·아칸소·코네티컷·켄터키·버지니아·뉴욕·워싱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과 전국 학력평가를 죄악시하는 일부 교사들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학부모들이 비싼 학비를 감수하면서 앞다퉈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미국의 경우 경쟁의 가치를 오인하고 있거나 교육 후진국이어서 그런 식으로까지 학력 경쟁을 부추긴다고 믿는다는 것인가. 전대미문의 반교육적 행태를 전대미문의 궤변으로 감싸는 교사까지 교단에 서게 해 그 해악을 더 키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