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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9년 납북됐다 돌아오지 못한 대한항공(KAL)여객기(YS-11 ) 탑승자 가족들이 1970년 이뤄졌던 미국과 북한의 납북자 송환협상 자료를 공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KAL기 납북사건은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주) YS-11기가 강릉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함남 원산 근처 선덕비행장에 강제착륙한 사건이다. 여객기를 납치한 범인은 승객을 가장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였다. 북한 만행을 규탄하는 국제사회 여론이 거세지자 북한은 1970년 2월 14일 판문점을 통해, 납치한 50명(조창희 제외) 중 39명만을 송환했다.
송환되지 못한 납북자 가족들은 피랍 39주년이 되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회견을 갖고 "지금까지도 KAL기 납치 사건 관련 자료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지난 39년간 밝히지 않은 사건의 전말과 11인만이 왜 북한에 남아 송환되지 못하고 있는지를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피랍자 황원씨 아들)는 "당시 정부는 전원송환 방침을 세웠지만, 돌연 39명만 송환했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KAL사건에 관한 정보 일체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체제 경쟁시대,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이날 가족들은 국가기록원에서 입수한 외교부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포터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1970년 1월 3일자 문서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이 송환 협상을 했고 합의사항을 미국 국무성 마샬차관보에게 전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족들은 이 문서에 나와있는 "무조건 송환 방침을 바꿔 대한적십자사 대표로 하여금 인수증에 서명하게 한다는데 합의했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전원 송환에서 39명만을 송환하기로 합의한 내막이 밝혀져야 11인의 송환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기 때문.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KAL기 납북자 송환문제를 다뤄 북한과 미국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 협상을 벌였던 미국은 일부 송환에 북한과 접점을 맞췄고 이를 한국에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체제경쟁이 극심했던 시대였기에 한명도 송환하지 못하는 것보다 일부 송환이라도 이뤄야겠다는 생각에 한국은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그런 합의사항 때문에 지난 39년간 정부가 나머지 11인의 억류를 묵인했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가족들은 협상과정 전말이 공개돼야 11인의 송환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 30년 지나도 정보 공개 안해"
피랍자인 스튜어디스 정경숙씨 오빠 정현수씨는 "정부는 30년 이상 지나면 통상 공개하는 정부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기록원에 대통령 기록물 공개를 요청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송환 협상이 당시 복잡한 국제 정세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이를 공개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피랍자 이동기씨 아들 이종성씨는 "아버지는 시골에서 장사했던 사람으로 정치와 이념에서 무관한 사람이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송환돼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외교문제로 제기하는 일본이 부럽다. 정치적 이유를 떠나 일본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이라도 청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 대표는 납북어부들과 달리 KAL기 피랍자의 정보가 40년 가까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북한의 특별관리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 대표는 "당시 납치됐던 인사들은 방송국 PD 의사 등 엘리트들이었다. 북한은 이들을 일본인 납북자와 함께 체제선전용으로서 특별관리 대상으로 두고 철저히 통제했을 가능성이 크다. 납북어부들이 탈북하면 같은 교화 대상이었던 다른 납북어부의 정보를 제공했지만, 이들의 정보를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2001년 2월 제3차 남북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 피랍 스튜어디스 성경희의 어머니가 평양 고려호텔에서 딸과 32년 만에 재회했다. 당시 피랍자 가족들은 북한이 나머지 피해자의 생사확인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사확인불가능이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