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지를 잘 돌보는 일은 아마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이 단연 1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성묘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분에 대한 미망인으로서의 예절일 뿐 망자가 벌초 때문에 신났다 화났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벌초를 한다는 것은 동양인의 미풍양속으로 교육목적상 효 사상에 일조한다고 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장묘 문화가 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자숭배 신앙에 가까운 묘지 관행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묘지에 쏟는 정성 제발 생전에 했으면 싶고 전국 토지를 잠식하고 있는 묘지 때문에 산 사람들 생활공간이 부족해지는 판국이니 호화묘지 부러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간소화로 전환해야 합니다.

    시골을 떠난지 30여 년 동안 조상님들 묘소 벌초는 거기 살고 있는 형님 몫이었습니다. 형님은 워낙 그런 일엔 과도한 열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금년에 형님이 무릎관절 수술을 하는 바람에 아직 보행이 불편하여 나보고 와서 벌초를 하라고 했습니다.
     
    새벽기도 마치고 아침은 대강 해치우고 운전대 잡고 엑셀을 밟았습니다. 비온 뒤 가을 하늘이라 청명하기 그지없고 하늘에 떠 있는 새털구름은 정말로 죽이는 거였습니다. 교동도에 들어가니 공기는 더 맑았습니다. 바다 건너 북한이 그렇게 뚜렷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지척에 우리 동포가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니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시골에 있을 때는 지금처럼 기계화되기 전이라 대부분의 일이 수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농업도 기계화, 과학화, 선진화 되다보니 벌초도 낫으로 하는 게 아니고 예초기로 합니다. 나는 낫 세대인데 지금은 기계 세대이니 나 같은 구닥다리는 벌초하는 것도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진땀까지 포함하여 내 몸을 흥건히 적셨습니다. 그래도 여러 묘소를 깨끗하게 깎아놓고 보니 간만에 이발을 한 것처럼 훤해 보였습니다. 

    일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형님 장모님이 임종을 앞두고 있는데 그 분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해외 출타 중이니 나보고 가서 기도 좀 해 드리고 가라고 해서 들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나도 수없는 죽음을 보았던 터라 특히 기독교인 죽음에 기도로 마무리 시켜드리는 일은 세상을 뜨는 분한테나 가족들한테도 필요하리라 생각하여 들어갔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권사님은 몰골이 극도로 수척해 있었고 곧 숨이 넘어갈 듯 말듯 한 상태였습니다. 내가 들어가서 인사를 하니 죽음 앞에서도 얼른 알아보고 반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임종기도일 수도 있겠는 터라 모두가 숙연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권사님이 말은 못해도 표정을 보니 굉장히 고마워하면서 내가 나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자녀들이 교회는 나가지 않지만 나보고 뜻하지 않은 방문에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큰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참으로 축복이겠다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이길 장사는 없는 것인데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 지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이 돌아가시면 또 하나의 무덤이 생기든지 아니면 화장을 하든지 해서 일생이 끝나는데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람되고 보람되며 보람되고 보람되니 모든 것이 보람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되기 위하여 오늘도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입니다. 일주일이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가고 한 세대도 금방 지나갑니다. 작렬하던 태양도 그 맹위를 날리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피부에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