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은 5일 공개서한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북식량 지원 방안에 대해 제언했다.

    이 대표는 이날 공개서한을 통해 "신뢰성이 검증된 북한의 신뢰부족에 대한 객관적 자료와 북한 당국의 제시한 식량 부족 상황 극복 방안을 토대로 우리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대북 식량 지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이 대통령은 고질적인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선 북한으로부터 ‘집단농’을 내용으로 하는 ‘주체농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 대신 혁명적인 농지개혁을 통하여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가족농’과 같은 ‘개인농’으로 영농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북 식량 지원에 관하여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전문
    존경하는 이명박 대통령님,

    북한의 식량난이 또 다시 국내외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에 관한 어두운 소식이 특히 동포의 입장에서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 동포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이끄시는 새 정부도 이 문제에 관하여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4일 이미 3주 전에 적십자사의 남북연락 통로를 통해 옥수수 5만톤을 제공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접촉을 북한측에 제의했으나 아직 북한측으로부터 이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날 통일부장관의 이 같은 발표는 아마도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우선 5만톤의 옥수수를 북한에 제공하는 문제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는 오랜 기간 남북대화에 참가하여 북한 사람들과 직접 협상을 수행한 경험이 있고 또 북한 문제와 남북관계의 흐름을 나름대로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저는 대통령께서 이끄시는 새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 관한 단안을 내리기에 앞서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저의 생각을 대통령께 진언하고 이를 참고하시도록 건의할 목적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북한 동포들의 식량난이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되는 절박한 인도적 문제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무작정 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량을 지원한다면, 우리가 지원하는 식량으로 북한 동포들의 식량난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 인식에 입각하여 저는 새 정부가 동포애와 인도주의에 입각한 긴급 대북 식량 지원을 적극 추진하되 그 방안은 다음과 같이 해 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첫째로, 저는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금년도의 식량 부족량에 관하여 신뢰성이 검증된 객관적 자료와 함께 북한 당국 스스로의 당면한 식량 부족 상황 극복 방안을 제시받고 이를 토대로 우리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대북 식량 지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대북 지원 식량을 지원하게 될 경우 그에 앞서 반드시 식량이 실수요자에게 전달되는지의 여부를 현장에서 전수 확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모니터링’ 방안이 확실하게 강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지원하는 식량이 군용으로 전용되거나 ‘농민시장’으로 유출되는 길을 봉쇄하고 실수요자인 굶주린 북한 동포들에 의하여 소비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북 지원 식량은 전량 쌀이나 그 밖의 알곡이 아니라 옥수수 가루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그러나, 이와 같은 긴급 대북 식량 지원은, 실현되더라도, 미봉책일 뿐이지 이것으로 이미 구조적으로 만성화되어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에는 식량난의 해소를 가로막는 근원적 장애물이 있습니다. 소위 ‘주체농법’이 그것입니다. 북한판 ‘주체농법’이 문제인 이유는 ‘주체농법’의 실체가 ‘집단농’이기 때문입니다. ‘집단농’이 농민들의 증산 의욕을 위축시켜 양곡 증산을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스탈린 시대의 구 소련과 모택동 시대의 중국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등소평 시대에 와서 ‘집단농’을 ‘가족농’으로 바꿈으로써 양곡 증산을 실현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위대한 농업혁명을 이룩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족농’은 ‘개인농’의 한 형태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식량 증산이 가능한 많은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의 ‘1인당 경지면적’은 남한에 비해 2배입니다. 농업생산의 3대 조건인 종자와 경지면적 및 기후 면에서 북한의 조건은 남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농업기술도 남한에 비해 낙후된 것이 아니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주체농법’입니다. 북한에서도 ‘집단농’을 ‘개인농’으로 바꾸기만 하면 양곡의 3-4배 증산이 가능하다는 실험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지금도 여전히 ‘집단농’을 내용으로 하는 ‘주체농법’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양곡의 증산은 연목구어입니다. 양곡의 증산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제공하는 식량 원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것입니다.

    양곡의 증산에 의하지 않고 식량난을 해소하는 다른 방법이 물론 있습니다. 돈을 써서 부족한 식량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두 가지 방법으로 식량 도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돈을 빌리는 것입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북한의 선택을 요구합니다. 전자의 방법은 시장경제의 수용을 요구하고 후자의 방법은 국제적 신용의 확보를 요구합니다. 한 마디로 등소평의 중국처럼 개혁ㆍ개방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북한은 개혁ㆍ개방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은 작년 10월 평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결코 개혁ㆍ개방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 결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회담 후 정부에 대해 다시는 북한의 개혁ㆍ개방을 거론하지 말도록 단속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저는 이상과 같은 상황 인식에 입각하여 대통령께서 이끄시는 새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북한의 식량 문제에 관한 정부의 기본 입장을 공식으로 천명할 것을 건의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정부가 북한의 식량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그 같은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북한에게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할 것을 건의합니다.

    첫째로, 북한은 남한과 함께 <세계식량기구(WFP)>와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등 유엔 전문기구와 협조하여 북한의 중장기 식량 수급상황과 현 식량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여기서 도출되는 해결 방안을 실천하고 이행하겠다고 약속할 것.

    둘째로, 북한은 ‘집단농’을 내용으로 하는 ‘주체농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 대신 혁명적인 농지개혁을 통하여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가족농’과 같은 ‘개인농’으로 영농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할 것.

    셋째로, 북한은 과감한 경제개혁을 통하여 중국식 개혁ㆍ개방과 시장경제를 단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약속할 것.

    존경하는 대통령님,

    마지막으로 강조되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북한에 제공하는 식량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배의 투명성 문제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북한에 보내 준 식량이, 비록 그 가운데 일부가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되는 장면이 사진이나 제한된 ‘모니터링’을 통해 ‘전시용’이나 ‘기만용’으로 연출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군인’과 ‘당원’들은 물론 ‘정권’ 실세 등 ‘특권층’의 차지가 되어서 그들과 그 가족들의 배를 채워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먹고 남은 식량이 ‘농민시장’으로 유출되어서 북한판 ‘자본주의’ 식 ‘졸부’들을 만들어 내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 왔습니다.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 마당에 이 같은 일이 더 이상 계속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김정일의 북한은 근본 문제 해결 방안은 물론 당면한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을 위하여 정부가 요구하는 조치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북한이 입장을 바꾸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의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북한의 식량난이 실제로 심각한 것이라면 북한의 그러한 무리한 자세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동안 정부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은 유보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대통령께서는 그 동안 대북정책 추진의 큰 원칙의 하나로 ‘국민적 합의’를 강조했습니다. 모쪼록, 대통령께서 대북 식량 지원 문제에 대한 새로운 단안을 내리실 때 단안을 내리기에 앞서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참고해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건강하신 가운데 국정 운영에 큰 성취를 이룩하시어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8년6월4일

    이동복 올림
    전 남북고위급회담 대표/통일원 남북회담사무국장/
    15대 국회의원/명지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