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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창달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뉴라이트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는 4월 9일 실시되는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뉴라이트 지향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뉴라이트 성향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이들은 18대 국회에 진출,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적극 뒷받침해 선진한국을 실현하고 깨끗한 보수를 신념으로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희망하는 뉴라이트 활동 인사들은 뉴데일리에 문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 한나라당은 공천경쟁률 4.82:1이란 수치가 보여주듯 공천전쟁 중이다. 특히 텃밭인 TK지역은 한바탕 '피바람'이 지나간 후에야 생존자명단이 정리될 것으로 전망되리만치 살벌한 지뢰밭이다.
그런데 그런 지뢰밭 속으로 초연하게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맨' 이영식 교수다. 지난 세월, MB의 정치적 꿈을 위해 결단과 뚝심으로 당내 경선과 대선의 가시밭길을 헤쳤듯이 이제 자신만의 정치적 꿈을 개척하기 위해 기꺼이 거친 광야로 뛰어들었다.
이번 총선에는 뉴라이트계열과 MB의 캠프출신들이 새물결을 이루며 대거 공천경쟁에 뛰어들고 있는데 이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이 교수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MB의 정치철학과 정책을 현실 속에서 씨뿌리고 꽃피우는 전도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대구산업정보대학 교수이자 법학박사인 그는 새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과 정치철학을 갖추고 있는 뉴리더다. 특히 타고난 뚝심과 추진력은 '리틀 MB'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MB와 너무 닮았다. 총 한자루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필마단기로 황야를 누비는 총잡이처럼 TK목장에 뛰어든 것도 이같은 타고난 면모 때문이다.
대선후 인수위를 통해 정부의 주요 임명직으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그에게 다가왔지만 단호히 거부하고 선거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항상 전선(戰線)에 서있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한 카드이기도 하다.
기자가 인터뷰하기 위해 이교수를 찾았지만 동분서주하는 그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3전4기 끝에 경북 칠곡에 있는 그의 지역구 선거사무소에서 어렵게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이교수는 대뜸 "변화가 대세다"라는 알듯 모를듯한 말을 던졌다.
"MB를 가까이서 모시고 돕기 위해서는 이제 내가 금배지를 달 수 밖에 없다"며 총선 출마의 당위성을 털어놓은 그는 "여의도로 들어가 정치를 확 바꾸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칠곡이 고향인 이교수가 도전한 고령 성주 칠곡 지역구는 그야말로 쟁쟁한 거물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박근혜계인 현역의 이인기의원이 맹주로서 호령하고 있는데다 친MB계로 분류되는 전국회의원인 주진우 사조그룹회장까지 가세해 여의도 재입성을 노리고 있다.
이교수에게는 당내 공천경쟁에서 이들을 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정작 당사자인 이교수는 이런 것들을 사소한 것으로 여긴다. 넘고 건너야할 산과 강이 첩첩이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지만 "나는 요즘 고향인 고령 성주 칠곡지역을 어떻게 하면 발전시킬까 하는 생각으로 온통 가득차 있다"면서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는 이미 한발 앞서 달리고 있다.
MB맨들 모두 나름의 MB와의 인연 한가닥씩 갖고 있다. 이교수도 당연히 MB와의 인연이 있다. 그러나 그와 MB와의 관계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처음부터 MB의 수족(手足)으로서 움직였고 지금도 MB의 수족(手足)이다.
이교수는 MB세력의 근간인 선진한국국민포럼의 사무총장으로 맹활약하면서 지금의 거대한 선진국민연대를 만들어냈다. 이교수는 항상 MB의 동력(動力)이었던 셈이다. 그의 MB와의 관계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MB와의 첫만남에 대해 묻자 이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14년 전 MB를 처음 만났을 때 노타이 차림의 소탈한 그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계적 기업의 CEO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형님같은 다정한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나는 MB만이 우리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지도자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MB가 시장시절 나를 불러 미래를 말씀하실 때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당시 회원이래야 고작 800여명 밖에 안되는 선진한국국민포럼이었다. 그때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조직을 키워나갔다. 대구로 강원도로 제주도로 물불 안가리고 뛰어다닌 덕분에 경선과 대선에서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대조직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이교수의 얼굴에는 자긍심이 넘쳐났다.
언제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면서 말문을 연 이교수는 "경선 때 광주에서 첫 토론회가 끝나고 대구 경북에서 이명박후보의 지지도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질 때 정말 그 원인을 몰라 미칠 것 같았어요. 하나 더 말한다면 조직을 해 나가는 초창기라 하겠지요.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 빠른 것 아닌가라고 유보적 입장을 취할 때였지요"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변화는 곧 움직임이고 움직여야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인생철학이자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움직인다. 그는 지금껏 미래를 내다보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우직하게 뚜벅뚜벅 걸어왔다.
이영식 그는 한말의 막걸리처럼 서민적이고 털털하다. 한편으로 법학박사라는 이력에서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매사에 지극히 논리적이지만 이런 따분하고 인간미없는 논리들을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면서 백지화시킬만큼 호탕한 것도 이교수다. 무늬보다는 알맹이를 더 좋아하는 것도 그다.
그가 내미는 이력서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왜소하지도 않다. 그가 가진 경력 중 선진국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직함 하나만 가지고도 수십개의 경력을 능히 감당할 만큼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민연대는 MB의 외곽세력을 총망라한 거대조직이다. 463만 거대 회원을 거느린 이 조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사람이 바로 이교수다.
MB의 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MB의 의중이 내려오는 최상류에 위치하고 있는 몇몇 사람 중 하나가 이교수 그다. 지역이 그를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도권정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의도를 향해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지도자라면 당연히 나름의 확실한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지역을 대표하고 국가입법기관인 국회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해 이교수는 주저없이 변화를 꼽는다.
이교수는 "시대의 화두이자 정권의 화두인 변화가 고령 성주 칠곡지역구에도 화두가 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변화는 지역의 모든 것에 적용돼야 한다"면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MB정권의 요체를 경륜과 실천적인 변화라고 본다. 따라서 그 변화를 제대로 지역에 가져오고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MB가 한반도대운하를 통해 침체된 한국을 들어 올리듯이 한반도대운하를 지역발전의 지렛대로 삼는다는게 MB맨인 그가 내세우는 비전의 핵심이다.
국회로 들어가면 어느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냐고 기자가 묻자 "국회의원은 어느 특정분야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가발전과 지역발전이 특정한 분야에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분야에는 그곳이 어디든 공부를 해가며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굳이 한두 분야를 꼽는다면 특별히 교육문제와 보건복지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사회복지과 교수이니까"라고 덧붙였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때도 그랬고 대선 때도 최전선에서 MB의 야전사령관으로서 그는 싸웠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만의 싸움터'로 나왔다.
<이 인터뷰는 대구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준기 시민논설위원이 작성한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