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4일 오피니언면 '시론'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이명박과 ‘가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고만장이라는 극언을 한나라당에 쏟아붓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이명박에 줄 섰던 신(新)완장부대와 박근혜 세력이 공천을 놓고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모습에. 양측이 봉합했다지만 또 싸울 것이다. 멋들어진 우파 정권이 나올 줄 알았던 국민 사이에서는 한숨이 늘어가고 있다. 저러다가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정권의 '몰락사(史)'를 밟아갈 수밖에.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한다더니.

    YS·DJ·노무현 정권 때도 자신의 가신들이 속삭이는 말, “우리끼리 합시다”에 귀가 쏠리다가 망했다. 김영삼은 정권을 잡자마자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정계를 토사구팽시키고 끝내는 김종필(JP)까지 몰아냈다가 몰락했다. 김영삼은 지금도 탁자를 치며 후회한다. “내가 JP가 나가지 못하도록 말리려 했는데, 주변에서 괜찮다고 해서….” YS 가신들은 “충청도에서 JP의 영향력은 없다”며 JP 축출론을 YS에게 들이댔다. 정권을 잡았으니 거치적거리는 JP를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YS당’을 만들어 우리끼리 해보자. 여론조사 결과도 ‘JP 끝’으로 나왔다. 그러나 JP당이 만들어지자 충청도는 물론 TK(대구·경북)에서도 의석이 쏟아졌다. JP 축출은 비극의 시작. YS는 임기 내내 정국불안에 시달리다가 결국 환란을 맞이했다.

    DJ도 DJP연합으로 천신만고 끝에 정권을 세우자 처음엔 JP에게 보답하는 듯하다가 끝내 JP를 몰아냈다. 노무현은 처음부터 민주당을 깨버리고 ‘노무현당’을 만들었다. 문민출신 3대 대통령의 몰락사 뒤엔 정권을 만들기 위해 한 배에 탔던 제2세력을 몰아냈던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당’의 출현! 이것은 대통령당선인 이명박에게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당’의 출현은 보약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여의도식 정치란 강자의 싹쓸이, 그런 싹쓸이의 유혹을 최고 권력자 이명박이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이명박 시대의 성패가 달려 있다. 박근혜 편드는 얘기 말라고? 이명박은 박근혜든 누구든 봐준다는 생각에서 한나라당 공천 갈등이나 당권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명박 자신을 위해서. 노무현의 말로가 그렇지 않은가? 자신이 그토록 밀어주고 챙겨준 가신 중 누가 울음을 터뜨릴 것인가. 남의 일이 아니다. YS, DJ의 가신들도 몰락한 그들에게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다. 5년 후 청와대 떠날 때를 지금부터 상상해야 한다. 지금도 이명박 가신들은 말할 것이다. ‘우리끼리 합시다’라고.

    왜 그런 소릴? 자신들에겐 공천이 중요하고 당권을 잡아야 하기 때문 아닌가? 그러나 이명박이 가야 할 길은 다르지 않은가?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자를 남기느냐 아니냐의 문제이지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가신에게 금배지 챙겨주며 당권 놓고 힘자랑을 즐기는 대통령이 되어도 된다. 그러면?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문제를 그야말로 기업인의 ‘탈여의도 사고방식’으로 풀어나가려면 당선인 이명박의 이미지는 우선 특정 세력의 수장(首長)이 아니라 계파 초월의 총감독, 중립적인 선생님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말로만 계파가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보기에도 박근혜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공정한 위상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명박 계보의 완장부대부터 독식(獨食)하려고 기고만장하게 설쳐대면 용서하지 않고 매섭게 채찍질을 해야 한다.

    인사에서 공천에 이르기까지 매사 계파 수장이 아니라 천하권력자로서의 ‘배포’를 갖고 박근혜 쪽에 떡을 화끈하게 더 줄 필요가 있다. 왜? 받기 위해서 주는 것. 그런데도 더 받은 쪽에서 투정하면 최고권력자로서 힘을 쓸 수밖에. 그래도 박근혜 쪽이 트집을 잡는다면 ‘그래 나갈 테면 나가라’고 길을 터주는 것이 또한 정치다. 매듭을 짓는 것이 최고권력자에게 요구되는 정치 지도력이다. 줄 것, 받을 것 분명하고 시원하게 나눠 결정하는 것, 그게 ‘이명박식 실용 민주주의’이지 우물쭈물 어색하게 넘어가고 보는 것은 권위만 손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