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악산 기슭에서 엄습해 오는 칠흑 같은 어둠과 적막감에 섬뜩 놀랄지도 모른다. ‘대통령 이명박’은 내년 2월25일 취임 첫날 저녁에. 권력의 심장 청와대는 절대 왕정의 어느 왕궁보다 더 깊숙이, 더 첩첩이, 장엄하고도 밀폐된 구조 속에 대통령을 가둬놓고 있다. 26만4000여㎡(8만평)의 산중 절간. 밤이 되면 경호원들의 척척 하는 군홧발 소리만 들릴 뿐. 제왕이 되는 것이다. 겸손한 대통령이 되겠다? 누구나 그랬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 누구나 그랬다. 왜 오만하고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는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나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줄줄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권력에 만취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첫 결심, 나의 최대 적(敵)은 이명박 나 자신이다! 자기과신·자아도취에서 벗어나려는 무서운 결심을 지켜내지 못하면 10년동안 갈구하고 또 갈구했던 보수·우파 정권의 미래는 없다.

    실패한 대통령은 자신이 전지전능한 것으로 착각한다. 대통령이 가장 먼저 완장 차고 세상을 졸(卒)로 보면서 재단하기 시작한다. 입만 열면 “나는 대통령으로서~”, 벼락 출세나 졸부로 일어선 소인들의 언행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곡학아세의 해바라기들이 따라서 호가호위한다. 그 가르치려는 굴욕감에 여론 주도층부터 돌아서면서 결국 나라 전체가 돌아선다. 말 수를 최소화해야 하고 말할 땐 대통령 ‘이명박의 영혼’이 담긴 깊고도 사색적인 내용을.

    두번째 적은 청와대 보고서, 국가정보원 보고서, 행정부 보고서 등 수많은 보고서 더미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다. 민간 분야의 수준이 낮았던 개발독재 시대엔 청와대 비서실의 능력과 수준이 월등했다. 그러나 1980~90년대 성장을 거치며 예컨대, 재벌 기업 연구소보다 정보 수집·분석력, 선진화·세계화에 대한 식견이 턱없이 모자란다. 3류 아마추어들이 모인 청와대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 이명박은 보고서만 읽고 정책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현장에 나가 현장에서 결단하는 ‘현장 제1주의 대통령’, 그걸 이명박 브랜드로 실천한다면 국민은 일하는 대통령을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루 24시간중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정도를, 1년 365일 중 180일 정도를 현장에서 보낸다면 성공한 대통령의 최소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세번째 적은 관료주의다.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로 들어가면 6개월도 안돼 “공직자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고 감탄한다. 공직자들은 그 거대한 조직과 정권 때마다 살아남은 카멜레온의 지략과 생존력을 총동원해 신임 대통령을 가랑비에 옷 적시듯이 관료에 대해 세뇌시킨다. 김영삼 정부 시절, 어느 외무부장관의 승승장구를 견제하려던 국가안전기획부는 그의 ‘인민군 자진 입대’라는 결정타를 보고해 낙마시켰다. 관료사회를 적으로 돌리면 정권의 실행 도구를 잃어버리지만, 관료라는 배 위에 올라타면 흔들리다가 무너진다. 관료의 기본 속성은 개혁 기피다.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격려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확인, 또 확인하며 관료사회를 선장처럼 이끌어가야 한다. 재벌도 마찬가지다. 재벌 혁파? 무슨 혁파? 우린 다르다? 역대 정권 모두 관료·재벌의 포로가 됐다. 관료와 재벌은 독이자 약이다.

    네번째 적은? 친인척과 가신(家臣), 학연·지연이다. 이런 대통령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청와대 가족식사. 대통령은 한식으로, 부인은 중식, 아들은 일식, 딸은 이탈리아식 메뉴로 제각각. 이런 월권과 국정 농단이 냄새만 피워도 민심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썩은 보수·우파세력의 부활을 경계해야 함은 물론이다. 친일파가 이승만을 병풍삼아 부활했던 것처럼 썩은 보수·우파세력이 이명박 정권을 계기로 또 재기하라고? 절대 안된다. 새 인물들로 보수·우파 시대를 이끌어갈 거대한 ‘이명박 인재뱅크’를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보다 대통령을 해도 모자람이 없어보이는 인재들을 기용해야지 만만하게 부리기 쉬운 인물은 피해야 한다. 다섯번째 적은 ‘이명박식 독재’의 유혹이다. 입지전적 인물은 독재하기 쉽다. 이명박 정권의 성패는 출범한 뒤 2~3개월만 지켜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두려워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