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과 함께 내세운 핵심적인 국정 목표가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나눠 준다는 ‘지방 분권’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오히려 수도권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강제’ 지방 이전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지극히 중앙집권적 구호만 남았다. 현 정부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마지막 대못질을 가하고 있다.

    현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정책은 충남 연기·공주의 반쪽짜리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한 10개 혁신도시 건설, 6개의 기업도시 건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여의도 면적의 100배가 되는 토지가 파헤쳐지고 있으며 천문학적인 토지보상비가 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들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도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대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토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지역개발 분야의 대석학인 영국의 피터 홀 교수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지역 균형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갈대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입지하고 있는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진흥공단은 경남 진주로 이전한다고 한다. 국제교류의 허브인 국제교류재단은 서울에서 제주 서귀포로 옮긴다고 한다. 효율성을 무시한 나눠먹기식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랏빚이 300조원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정권 말기에 4조원이나 들여 오기를 부리는 것은, 시간에 쫓긴 노무현 정부의 단말마적 비명처럼 들린다.

    참여정부는 국가의 미래를 담보한, 거대한 망국적 실험을 도대체 왜 계속하고 있는가.

    첫째, 국가 균형발전정책의 동기 자체가 불순했다. ‘재미 좀 보았다’는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처럼 수도권에 대한 지방의 상대적 박탈감은 정권 획득의 득표 전략이었다.

    둘째, 보다 근본적 원인은 노무현 정부의 좌파적 평등주의 도착증(倒錯症)이다. ‘그까짓 놈의 헌법’으로 매도하는 법치주의의 부정, 부자 때문에 못살고 수도권 때문에 지방이 못산다는 사회주의적 계급투쟁 의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상징인 수도 이전 발상도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했다. 수도권이 가진 것을 빼앗아 지방으로 나누어 주자는 발상에서 출발한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마찬가지다.

    셋째, 이러한 정책의 배후에는 현 정부 참모진의 아마추어리즘과 철학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지방 분권을 주창했던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성경륭 현 청와대 정책실장(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분권 대신 공공기관 이전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이들은 지역 간 불균형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필연적 결과라고 보는 신마르크시즘 주술의 덫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좌파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마오쩌둥 치하의 하방(下放)운동이 그러하였고, 구소련의 시베리아 수용소군도를 건설한 동진(東進)정책이 그러하였다. 지방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전국 곳곳에 개발계획을 남발해 촉발된 부동산 버블과 그 붕괴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일본에 대해서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 무지의 만용과 곡학아세로밖에 볼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 이전에 막판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대선 주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표를 잃을까 봐 말이 없는 것이다. 참여정부도 이러한 정서를 읽고 대못질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 균형발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실질적인 지방 발전을 위해서는 보다 대담한 발상의 전환도 역설적으로 필요할 것 같다. 해양수산부는 부산으로, 문화관광부는 광주로, 건설교통부는 대구로 분산배치하고, 공무원 1만 명을 분산시키기 위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학생·교직원 3만 명의 서울대학교를 이전시키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정권은 유한하고 국토는 영원하다. 잘못된 정책의 보복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넘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