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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이-박-창의 '보수 대세 시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머릿속을 지근지근 들볶는 난제라해서 ‘이명박·이회창 분열’을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둔다면? 보수·우파의 정권교체 열망을 꺾는 재앙이 닥쳐올 수밖에 없다. 양이(兩李)씨 중 누굴 찍어야 할까? 이런 소극적인 고민으로는 재앙을 막을 길이 없다. 앞으로 1주일, BBK 폭탄 덩어리가 펑펑 터지는 대로 지켜본 뒤 결정하거나, BBK 폭죽 쇼를 넋이 빠져 관람하다가 홧김에 충동 투표로 간다면? 재앙이 오고야 만다. 그러나 이명박 이회창은 물론이고 이들의 지지층이 앞으로 1주일간 몰아닥칠 대선 정국의 바다를 전략적으로 헤쳐간다면 재앙적 요소는 보수·우파의 눈앞에서 화려한 축복으로 변하고야 만다. 충분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
이른바 ‘보수·우파 대세(大勢) 프레임(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명박 이회창 지지도를 합친 것은 60%를 넘고 있다. 무슨 의미? 대선 판세는 정확히 말해 이명박 대세론이 아니라 보수·우파 대세론으로 봐야 한다. 노무현 정권의 난정(亂政)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보수·우파 대세론을 키워놓은 것이지, 이명박 이회창의 공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회창이 분열해도 보수·우파의 지지도 합계가 60%를 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역시 BBK! 두 이씨 지지 세력은 ‘시대정신 = 정권교체’라는 등식을 신앙처럼 받아들여왔다. 이런 신앙이 BBK로 흔들려 보수·우파 대세론의 둑을 허물고 넘어가버린다면 정권교체는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보수·우파 대세론을 대선일까지 ‘담수 댐’과 같은 든든한 틀 안에 가둬두는 데만 기필코 성공한다면 보수·우파의 승리는 따논 당상이다. 이명박이 싫으면 이회창을 지지하고, 이회창이 싫으면 이명박을 지지하는 패턴이 만들어지고, 정권교체가 모든 가치를 초월한다는 절절한 구호가 보수·우파의 정서에 깊이 파고들 수만 있다면.
이런 보수·우파의 댐을 구축하는 데에는 두 가지 전략이 필수인 것 같다. 최대 필수조건은 정동영이 범여권의 최종 단일화 후보로 낙착된다해도 끝내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도를 굳혀버리는 것이다. 경기 내내 운동장 한 구석에서 몸 풀다가 경기 종료를 지켜봐야 하는 후보 선수처럼. 이번 대선을 3자 대결이 아니라 두 이씨 간 메이저 게임으로. 이명박 이회창 간‘숙명의 대결’ ‘필사의 경쟁’에 지지층의 호응과 관심 유지로 흥행 대박이 연달아 터뜨려지면 정동영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그러나 이명박 이회창 간 경쟁이 ‘더티 게임’으로 일관한다면 관중이 정동영을 주전 선수로 불러들이는 구도로 급변할 수 있다. 두 이씨가 어떤 방식으로 경쟁해야 할 것인지 해답이 나온다.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면 상대방을 거꾸러트릴 수 있다? 악담을 쏟아놓고, 비수를 꽂고, 폭로하는 방식? 국민은 넌더리를 내고 있다. 누가 더 고품격의 인간인가? 흠이 있다 해도 누가 나라를 더 잘 이끌 것인가? 이명박 이회창은 좌파 무능세력의 ‘악다구니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보수·우파 대세 프레임’에 갇혀 있던 지지층은 환멸을 토해내며 ‘에이라, 정동영 찍자’로 변해버린다.
이명박 이회창이 전략가라면 전면전(total war)이 아니라 국지전(limited war)을 펼쳐야 할 것이다. 경쟁은 하되, 하나가 되어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게 정치라는 예술의 미묘한 멋이고 테크닉이다. 둘 중 한 사람, 대통령이 되면 피흘리는 정치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감(感)만 느껴져도 보수·우파 대세론의 담장이 허물어질 수 있다.
이런 경쟁·협력관계로 대선 판세가 굳어지는 가운데 박근혜의 전격적인 등장은 보수·우파의 정권교체에 피날레가 될 수 있다. 박근혜까지 출마할 수 있었다면? 이·박·창(昌) 지지도 합산이 80%대에 육박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대선이 ‘보수·우파 대세 시대’의 개막임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이런 거대한 틀을 일단 만든 뒤 ‘한 후보 밀어주기’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대선일 4~5일 전쯤 확정지어도 늦지 않다. 이명박 이회창이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었는데도 발로 찬다? 실패했을 경우 보수·우파의 분노. 이·박·창 모두 마음을 비우고 지금 떠올려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