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박근혜와 조순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자칭 보수·우파 세력 중에는 썩은 계란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 온천 속 같은 의식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부패가 무능보다 낫다”는 부패 불감증, 여기에 “여자는 안돼”라는, 이미 사어(死語)가 돼버린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근육 우월주의. 군인 출신과 제왕적 대통령을 시조로 모시고 있는 한나라당 및 일부 지지층의 의식구조에 큰 뼈대로 자리잡고 있다. 박근혜의 경선 좌절은 이 두 개의 전근대적 큰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이회창의 출마에 박근혜의 침묵이 길어지자 ‘썩은 계란 세력’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다. 이명박의 잘못과 이명박을 도와주는 건 별개 아니냐. 사실상 경선 불복 아니냐. 남편이 별별 잘못을 저질러도 아내는 남편을 편들며 역성을 들어야 한다? 자신들의 의식 저 깊은 곳에 자리잡은 전근대적 의식을 ‘썩은 계란 세력’은 정당 민주주의라는 고상한 말로 포장하며 박근혜를 윽박질렀다. 여론의 이지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기회주의자로 몰릴 수밖에. “매일 말씀드릴 게 뭐가 있나요?” 하던 박근혜도 입을 열 수밖에. “이회창 출마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반응은 ‘당연히 할 말을 했군’이었다. 박근혜가 이회창을 편들 것으로 보았는가. 한국 정치는 큰 인물을 쓰다가 흔들고 시궁창에 버린다.

    조순형은 또 거스른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당 선언을 하자 탈당하겠다, 내년 총선 불출마도 검토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삶은 계란을 벗겼을 때 흰자위의 순백을 보는 듯하다. 조순형의 경선 좌절에 정객(政客)과 논객(論客)들이 침묵하는 것도 한국 여론시장의 대표적인 위선이다. 조순형이 민주당 경선에서 패권을 잡으면 ‘죽쒀서∼’하는 위기감을 느낀 반(反)조순형 세력이 작전·기획세력을 투입해 한 방에 날려버려도 여론은 침묵했다. 국정파탄세력과는 악수할 수 없다던 민주당의 변절. 그간 고군분투하던 민주당에 보낸 격려가 아깝다. 대세를 거스르는 대의(大義)의 용기에 국민이 큰 박수를 쳐줘야 제2, 제3의 조순형이 나올 것 아닌가.

    2007년 대선도 막판을 향해 요동치고 있다. 이 난삽한 대선에서 큰 길을 걷는 두 명의 정치인을 수확한 것만 해도 희망적이다. 살벌한 세상, 이런 덕담조차 ‘정도의 정치인’들을 헐뜯는 데 동원되는 새로운 빌미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