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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오만의 극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적장(敵將)으로부터도 존경받아라. 정치 파벌 내 제2인자의 처신에 관한 고전(古典)이다. 김영삼(YS)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좌동영·우형우라고 불린 김동영과 최형우라는 뚝심 참모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김동영은 1990년 노태우·YS·김종필 간 3당합당 직후 전립선암 선고를 받았다. 6,7개월 정도의 시한부 인생, 기저귀를 차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사투하는 김동영. 그러나 YS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동영이 대통령 노태우를 만난 자리였다. “각하, YS를 대통령으로만 만들어주시면 제가 각하의 부하가 되겠습니다.” 주군(主君)을 위해서라면 적장한테도 굴복하는 것이다. 노태우가 탄복했다. 왜 나한테는 저런 충신이 없는가. 김동영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YS와 서울대 병원에서 작별한다. “총재님! 대통령이 되시는 것을 못 보고 갈 것 같아 죄송합니다.” YS는 “나는 김동영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힌다.
이춘구, 그는 민정당의 뿌리인 군인 출신 정치인이었다.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YS는 그를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했다. 민정계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었기 때문. 이춘구는 YS를 적극 도왔다. 주군인 전두환·노태우를 위해서였다. YS는 “나에겐 왜 이춘구같은 사람이 없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춘구는 YS가 대선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낙향했다. YS 대통령 밑에서 ‘한 감투’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제2인자에겐 의리의 처신, 멋과 향기가 있었다.
이명박의 오른팔 이재오는 박근혜로부터 “오만의 극치”라는 비판을 샀다. 박근혜는 최상의 그악스러운 표현을 쓰지 않는 어법. 휴전선은요? 대전은요? 이재오는 386식 직설화법이다. “아직도 경선하는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 이재오가 박근혜를 찾아가 “이명박 대통령만 만들어주면 내가 충성하겠다”고 했다면? 이재오가 박근혜를 공격하면 이명박에게 불리할 것임을 이재오가 모를 리 없다. 그러면 왜 공격? ‘대통령 이명박’은 따논 당상이다보니 다른 사심(私心)이 생긴 것. 당권이다. 박근혜가 들어오면 당권을 놓치니. 이재오는 중앙대로부터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려다가 무산됐다. 이런 제2인자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