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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 2월 25일 만 61세의 나이로 청와대를 떠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의 평균 연령 79세보다 열여덟 살이나 젊다. 대통령직을 물러났다고 ‘뒷방’에서 보내기엔 여생이 너무나 길다.
전직(前職) 대통령 노무현의 활발한 움직임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16개 필지 3만6459㎡(1만1028평)를 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형 부부, 고등학교 동문, 노 대통령 후원자인 박연차씨 회사 임원, 대통령 경호실이 차곡차곡 매입해 놓았다고 한다. 노 대통령과 노 대통령 주변 사람들 명의로 돼 있는 이 일대를 ‘노무현 타운’이라고밖에 달리 부를 방법이 없다.
노 대통령은 작년 8월 노사모 핵심멤버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여러분을 생각하며 고향 집을 크게 지을 생각을 하게 됐다. 퇴임하면 그 집 넓은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자”고 했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역사적 과제가 남아있는 한 노사모는 끝날 수 없다. 나도 임기를 마치면 노사모가 될 것”이라고 했다. 봉하마을 노무현 타운은 노 대통령 퇴임 후 노사모들의 활동 거점이 될 모양이다.
김해 소재 인제대는 ‘노무현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노 대통령 재임 때 정책 자료들을 후학들이 열람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대통령 고향에 마련한다는 취지다.
이와 별도로 충남 연기·공주 행정중심복합도시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통합 기록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역대 전임 대통령의 자료는 전부 합해서 30만건 정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7만건으로 가장 많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4만여 건으로 그 다음이다. 반면 노 대통령 관련 기록은 이미 50만건에 이른다고 한다. 노 대통령 기록이 전체 역대 대통령 기록의 3분의 2 가량이 된다. 이 기록을 한데 모아 놓으면 말이 통합 기록관이지 실제론 ‘노무현 기념관 2’가 된다.
청와대 쪽에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노 대통령 머릿속엔 ‘노무현 스쿨’ 구상도 자리 잡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초 6월항쟁 관련인사들과 점심을 하면서 “대통령을 하면서 겪은 성공과 실수에 대한 경험담이 젊은 사람들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통령은 또 측근들에게 “대통령직의 생생한 경험을 강연이나 강의를 통해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곤 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미국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이나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젊은 정치인 양성 코스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현실 정치판에 직접 플레이어로 뛰어들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도 정치와 언론에 관한 문제는 손을 놓지 않겠다”고 했었다. 자신이 밀어붙였던 개헌에 대해 차기 정부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을 경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도 마다 않겠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당장 내년 4월 총선 때 노 대통령이 노무현 타운 뒤편 골프 연습장에서 스윙 연습만 하며 지낼지 관심거리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참여정부 평가포럼은 내년 총선용 조직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떠돌았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부산 기장에서 선거운동을 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은 그 흐름 중 하나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한국 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잘못 하고 있다’는 응답이 65.6%였다. 국민의 3분의 2 정도는 어서 내년 2월이 왔으면 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와도 ‘눈을 어지럽히는’ 노 대통령의 개인기가 시야에서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치밀하게 전직 프로젝트가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