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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승자의 분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패자의 눈물이 뜨거운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울컥 솟구치기 때문이다. 이회창은 이성적이다. 1997년 12월17일, 첫번째 대권 도전에 실패하던 날 그는 울지 않았다. 그가 눈물을 결국 참지 못했던 것은 선거 다음날. 그를 경호했던 경찰청 파견 무인(武人)들이 작별 인사를 하러 온 자리였다. 한 경호관이 대표 인사를 했다. “총재님, 저희들은 이제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려고…흑흑흑….” 경호관 누구도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회창의 ‘이성’도 몸으로 충성해온 무인들의 꺽꺽하는 통곡 앞에서 무너졌다.
차 심부름을 하고 나온 여비서가 전했다. “총재님이 울고 계세요. …흑흑흑….” 한나라당 총재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김대중(DJ)과의 표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패자에게 닥쳐오는 고통은 끝이 없다.
패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분노를 잊는 것밖에 없다. 오히려 승자보다 빨리 분노를 잊어야 한다.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승자는 분노를 잊지 않는다. 원래 인간은 기고만장하니까. 대통령이 된 DJ는 안풍(安風) 북풍(北風)을 다시 만들어 패자를 폐인으로 만들어 나갔다.
박근혜가 경선 승복을 하자 이명박 대선 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것까지 맡아야 완전하고도 깨끗한 승복이지 말로만 하는 것은 승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대위원장은 이명박의 지휘를 받는 자리다. 활을 겨눴던 적장(敵將)의 ‘부하 계급장’을 달아라? 민주주의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배럭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미 민주당 경선이 끝나면 패자가 승자의 선대본부장이 된다? 승자는 패자에게 굴욕을 두번, 세번 강요해도 좋다? 승자에 대한 예우도 중요하지만 패자에 대한 예우도 필요하다. 패자로서의 최대 미덕은 무대에서 사라져주는 것이다.
이명박의 오른팔 이재오는 “진정한 화합을 이루려면 서로가 반성부터 해야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잘못되기를 바라면 화합이 아니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승자는 분노를 잊기 어려우니까. 이명박 캠프는 27일 박근혜 진영의 ‘자장면’ 해단식 날을 골라 ‘불고기’ 해단식으로 맞섰다. “인간은 아버지 죽음보다 권력을 뺏긴 걸 더 오래 기억한다.” 마키아벨리의 어록이다. ‘이명박의 사람들’은 다시 인간 공부를 해야 한다.
분노를 기억하면 잔인해진다. 이명박의 그릇 크기에 정권교체가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