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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가난은 참고 견딜 수 있다. 희망과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정작 서러운 것은 가난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놀림감이 되고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딱 그런 신세다.
민주당도 한때는 잘나갔다. 지난 정권에서는 집권당, 현 정권에서도 출발할 때까지는 여당이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의 핵심세력으로부터 버림받았고, 2004년 총선을 치르고 보니 의석 9석으로 급전직하했다. 국회에 처음 진출한 민주노동당에도 밀려 원내 제4당의 가난뱅이 신세가 됐다. 그후 이를 악물고 재기를 노리면서 재·보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이삭줍기를 해 한 석 두 석 늘려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또다시 9석으로 회귀했다. 간신히 허리 펴고 살아보나 했더니 원점이라니. 맥 빠지고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야속한 것은 믿고 의지했던 ‘님’의 배신이다. 민주당의 ‘님’은 바로 DJ(김대중 전 대통령)다. 노무현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대북송금 특검에 극력 반발하고, 동교동 가신들이 비리 혐의로 차례로 구속될 때 ‘정치 탄압’이라며 펄펄 뛰고, 국정원 불법 도청사건에 앞장서서 DJ 주변에 방어막을 치고,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DJ의 3남 홍업씨에게 공천을 주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도록 했던 게 누구였던가. 그런데 그 ‘님’은 침묵이라도 지켜달라는 민주당의 애원을 뿌리치고 등을 돌렸다. 그런 민주당에 김홍업씨의 탈당으로 보답했다.
괘씸한 것은 ‘열린우리당 탈당(2월 6일)-통합신당 창당(5월 7일)-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 창당(6월 27일)’의 과정을 거쳐 이번에 다시 탈당한 김한길·강봉균 등 19명의 의원이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이들은 민주당을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임무를 수행한 열린우리당의 전위대였다. 민주당에 ‘우리가 범여권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가 그 희망을 무참히 꺾었다. 더구나 이들은 빈손으로 나가지 않았다. 민주당의 김효석·김홍업·이낙연 의원을 떡고물처럼 묻혀서 함께 떠났다. 민주당은 이들의 숙주 역할만 한 꼴이 됐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5일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이다. 이름만 봐도 그렇다. 통합민주당의 이름에 ‘큰 대(大)’와 ‘새 신(新)’자만 집어넣은 셈이다. 작명하면서 스스로도 부끄러웠나 보다. 그런 당명을 사용해도 괜찮은지 중앙선관위에 문의한 걸 보니 말이다. ‘민주당’이란 명칭이 갖는 정통성과 ‘대통합’이란 명분을 함께 챙기려는 욕심이 그런 무리수를 두게 만들었을 것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정말 땅을 칠 일이다.
그러나 버림받고 짓밟혔다고 해서 무조건 국민의 동정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민주당이 겪었던, 또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2002년 ‘최초의 국민경선’으로 뽑은 노무현 후보를 내부에서 뒤흔들었기에 대선 후 노 대통령 세력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DJ가 편들어 주지 않는 게 야속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동안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DJ에게 집착한 측면이 있다. 홍업씨 공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윤리상 잘못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DJ의 마음이 민주당을 떠날까봐 눈치를 본 게 아니었던가. “잡탕식 통합은 하지 않겠다(박상천 대표)”거나 “DJ 말씀이라도 옳지 않은 것은 따라갈 수 없다(조순형 의원)”는 말이 아직 국민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의 이런 업보 때문이다.
민주당이 살 길은 한 가지다. 자기 연민과 DJ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대선의 격랑 속에서 허둥대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당과 제3지대 신당에서 각각 대선 후보가 나온다면 결국 후보 단일화로 갈 수밖에 없다(박 대표)”는 말이나 하고 있는가. 그 정도 수준이라면 차라리 지금 눈 질끈 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하는 게 낫다. 홀로 설 각오와 의지가 없다면 이용만 당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다. 자립 의지가 없는 정당에 눈길과 애정을 줄 국민은 아무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