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칼럼 ‘경선은 복싱 대표 선발전이 아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2년엔 민주당에 출입하면서 대통령 후보 경선을 관람했다. 올해는 한나라당 경선을 지켜보고 있다. 경선일이 다가올수록 ‘그때 그 장면’들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느낌이다. 5년 전 ‘서부리그’가 시작될 무렵엔 ‘이인제 대세론’이었는데, 올해 ‘동부리그’는 ‘이명박 대세론’ 속에 막이 올랐다. 5년 전 노무현이 ‘이인제 필패론’으로 ‘이인제 대세론’을 흔들더니, 올해는 박근혜가 ‘이명박 필패론’으로 ‘이명박 대세론’에 도전하고 있다.

    운동장의 선수들 움직임은 2002년 민주당이나 2007년 한나라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응원석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5년 전 민주당 사람들은 이인제와 노무현 대결이 접전으로 바뀌자 환호했었다. 일반국민의 눈길이 쏠렸기 때문이다. 그럴 듯한 승부가 펼쳐져야 구경꾼이 몰려드는 법이다. 민주당은 경선 흥행에 힘입어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싸움이 치열해지자 불안해 한다. “후보들이 본선에 나가기도 전에 상처를 입는다”든지 “같은 당 식구끼리 원수처럼 싸운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검증 공방으로 후보가 흠집 나고, 경선 후유증으로 당내 분열이 생길까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2002년 민주당 경선은 낙제점이었다. 경쟁 후보 장인의 전력까지 들춰내는 네거티브 공격이 오갔고, 패색이 짙어진 후보는 경선을 중도 사퇴한 뒤 결국 탈당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도 경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50%까지 치솟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과거 두 차례 대선에서 ‘모범적인’ 경선을 치렀다. 1997년 7월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이렇다 할 검증을 거치지 않고 압승했다. 경선 이틀 후인 7월 23일부터 국민회의(민주당 전신) 의원들이 국회에서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후보 지지율은 경선 열흘 만에 10%포인트가 빠졌고 한 달 후엔 3위로 떨어졌다.

    2002년 5월 경선 때는 이회창 후보가 68% 득표율로 2위 후보 18%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워낙 대세가 기운 시합이라 경선 후유증도 없었다. 경쟁 후보들은 이 후보를 중심으로 단결해서 정권 교체에 협력할 것을 다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선을 치렀는데도 이 후보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우리 선수끼리 싸우면서 기력을 다 써버리면 본선에서 무슨 힘으로 싸우느냐”는 걱정은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선 치열하게 싸울수록 본선에 나서는 후보의 경쟁력이 강화된다. “예선에서 생긴 상처를 본선에서 또 공격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도 복싱에서 통하는 말이다. 경선에서 유권자 심판을 거친 쟁점은 본선에서 처음 등장하는 경우보다 파괴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나라당은 미리 점지해놓은 후보에게 양탄자를 깔아주고 나머지 후보들을 들러리 세우는 통과의례 경선에 익숙해져 있다. 권위주의 정부 때 여당이 하던 방식이다. 그렇게 뽑은 후보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기만 하면 정권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이 같은 집권전략은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참담한 실패로 결론이 났다.

    한나라당은 요즘 난생 처음으로 경선다운 경선을 치르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치열한 검증 공세를 뚫고 경선을 통과하면 검증 없이 본선에 나서는 것보다 훨씬 강인하고 맷집 좋은 후보로 담금질될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경선 초반 20%포인트 지지율 열세를 딛고 역전극에 성공한다면 2002년 노풍에 버금가는 박풍을 일으킬 것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이 진정으로 정권 교체를 바란다면 두 후보가 8월 19일 경선 날까지 젖 먹던 힘마저 다 쏟아 붓도록 등을 떠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