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 '시론'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김대중 보트피플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DJ) 정치의 추악한 간교함에 분노의 화약고를 터뜨리지 못하는 국민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감옥을 갔다온 둘째아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주더니, 마침내 DJ는 ‘도로 열린우리당’까지 띄워 호남인과 이념 추종 세력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단언컨대, 민주당 종가(宗家)를 지켜온 조순형 한화갑 박상천을 정치적 고아로 만들어 민주당을 폐가 처분하고, 열린우리당을 위장폐업해 이들 두 당을 하나로 짝짓기하게 만들 수 있는, 세기말적 정치공학을 구상할 수 있는 인물은 DJ 말고는 없다.

    한나라당에서 손학규를 들쑤셔 빠져나오게 하고, 입 안 혀처럼 움직이는 창당 기술자 김한길을 탈당시켜 민주당에 ‘위장전입’시키고, 그런 뒤 민주당을 흔들어 붕괴시키며 제집 드나들듯이 정당을 왔다갔다 하게 하고. 노무현 난정(亂政)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정동영·김근태를 빼내오고. 여기에 참가자들도 더듬거리며 발음하는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기발한 당명을 꾸며 시민사회 들러리들로 신장개업할 수 있는 발상을 누가?

    역시 DJ는 꼼짝할 수 없는 명분을 개발하는 데에는 달인이다. 민주정치는 양당정치라는 명분을 말하고 있다. 그가 양당 책임정치에 진실로 충실하다면 열린우리당이 대선에서 그대로 심판받도록 해야 한다. 노 정권에 맞서느라 그 고통을 겪어온 민주당을 적어도 내버려는 둬야 할 것 아닌가. 천정배의 탈당은 DJ의 ‘도로 열린우리당’ 창당 구상의 첫 신호탄이었다. 아무리 눈치 빠른 천정배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컬러로는 대선도, 내년 총선도 가망 없다고 계산했다 해도 법무장관과 원내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노무현을 배신? 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까지 딴 손학규가 탈당할까. 열린우리당의 속성이 기회주의라고 해도 저런 무더기 탈당이? 이 모든 의문이 풀렸다.

    동교동을 들락거리며 민주주의 양당 정치론 특강을 수강한 인물들 - 손학규, 정대철, 한명숙, 김혁규, 정균환… 이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DJ 특강 수강증’을 들고 ‘도로 열린우리당’ 발대식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DJ는 대권병에 걸리거나 내년 총선에 자신없는 정치인들을 한명씩 한명씩 ‘보트피플’로 빼내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타이타닉호로 만들어 나갔다. ‘도망병’이 몇개의 큰 그룹이 되자 마침내 DJ는 보트를 띄우며 ‘자, 타!’ 하고 있다. 20년, 30년 전부터 야당 분열 때나 선거 때마다 발휘되는 DJ 전형의 외곽·후방 때리기, 위아래 흔들기, 해독이 당장 어려운 난수표식 발언,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말하는 방식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이번엔 보트피플들을 모아 ‘김대중 보트피플당(黨)’이라는 기상천외한 구상으로 재집권을 모색하고 있다. 왜, 그 노령에도? 정권이 바뀌면 ‘DJ 60년 과거사’의 총체적 진실이 두려울 수밖에.

    범여권 야심가들은 지금 희희낙락하고 있다. 일단 대권행 선박에 탈 수 있는 티켓을 받았잖아? 이해찬 유시민도 막판 승선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야심가들에겐 애처로운 다음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DJ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DJ가 신당을 만들어준 뒤 ‘너희들끼리 알아서 대선 후보를 뽑으라’며 손 털 인물이라면 진정한 DJ가 아니다. 이들 중 몇 명 정도는 바다 밑으로 쓸어내 관객이 통쾌해 할 수 있는 파국 장면을 연출하면서 한나라당 후보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제3 후보’를 전격적으로 내세워 힘이 쏠리게 하는 시나리오. 대단한 파괴력과 흥행성을 갖게 될 것이다. DJ는 가급적 10월 중순까지 질질 끌고가다가 이런 역발상 드라마의 대미를 연출한다. 검증이고 뭐고 건너 뛰면서 남북화해 ‘쓰나미’로 선거판을 몰아치면 기억력이 짧거나 지역·이념에 충실한 유권자들은 환호하고.

    이번 대선은 ‘한나라당 대 김대중 구도’의 게임이다. 한나라당이 DJ 총감독에 의한 ‘제2의 노무현 후보’ 드라마를 깰 수 있다? 속단할 수는 없지만 비관적이다. 한나라당이 또 패배한다면? ‘DJ 보트피플당’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진 죄과보다 더 큰 죄를 지었다고 후세 사가(史家)들은 기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