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허주(虛舟) 김윤환의 눈은 크고 선했다. 그 눈에 불만과 분노를 가득 담은 세월을 3년간 보내다가 2003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말년에 국회의원 공천 탈락이라는 비운을 겪는다. 허주는 낙천하자 신당 창당의 배수진을 치고 이회창의 번복을 압박하려 한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이다. 속 마음은 전국구 자리라도 주면 한나라당에 잔류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회창과 가장 잘 통하는 강재섭을 만나 중재를 당부한다. “어이, 재섭이!” 허주는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말을 이어간다. 강재섭은 허주의 경북고 16년 후배. “니 내좀 도와줘. 창(이회창)한테 말좀 해줘라. 김윤환이가 전국구라도 받으면 탈당하지 않는다고. 니 지금까지 정치해오면서 내 신세 지지 않았나.” 허주는 강재섭에게 약속한다. “고향에서 니가 맹주하거래이.” 허주는 강재섭과 헤어진 후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묵묵부답, 허주는 민국당을 창당해 출마했다가 낙선. 그는 낭인 시절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실토했다. “재섭이가 그럴 수는 없는 기라.”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은 검사 강재섭을 청와대 비서실에 발탁하고, 39세의 강재섭을 전국구로 밀어넣은 후견인이었다. 1992년 10월 당시 여당인 민자당에서는 대선에 출마한 김영삼(YS)에 반대하는 박철언의 탈당을 신호탄으로 민정계의 탈당이 줄을 이어갔다. 강재섭은 잔류를 선언한다. YS는 대통령이 된 뒤 그 대가로 강재섭을 총재 비서실장에 맡겼다. 1997년 대선 후보 이회창은 YS의 탈당을 압박했다. 그해 11월 한나라당 대구 대회, 강재섭의 YS 탈당 촉구 연설이 당내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바꾼다. 단하에서는 당원들이 YS 인형을 두들겨패는 사건이 벌어지고. 격분한 YS는 결국 탈당한다.

    2006년 7월11일 당대표 경선 전당대회, 강재섭은 박근혜의 후원을 받아 대표가 된다. 그래서 강재섭이 박근혜 사람? 2007년 5월9일 강재섭의 경선 룰 중재안이 또 흐름을 가르고 있다. 박철언→김윤환→YS→이회창으로 바꿔 탄 ‘환승(換乘) 드라마’의 속편? ‘강재섭 가는데 당권 있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이번 경선 룰 문제는 그가 어디에 줄을 서느냐 하는 ‘강재섭의 법칙’과는 다른 문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교체를 하느냐 마느냐? 이미 강재섭은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