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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손학규의 추억'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간 손학규’에 정통한 정객(政客)들은 그의 탈당에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의 변신은 역시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정치와 인간성 간의 함수관계를 다시 확인시켜 준 데 불과하기 때문에.
1993년 재야 투사 출신의 정치학 교수 손학규는 경기도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시 학생운동권의 타도 대상이었던 민자당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게 된다. 한 정치부 기자의 회고다. 손학규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당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김영삼(YS) 대통령의 민주계 실세들을 찾아 다니며 면을 트려했나보다.
손학규가 만나러 갔던 어느 민주계 실세의 집에서 그 기자가 방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대화를 듣게 됐다. “제가 끝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누구 목소리? 손학규였다. 그 민주계 인사는 이렇게 추억했다. “정치꾼도 낯이 간지러워 입에 올리기 힘든 ‘충성’이라는 표현을 대학교수 출신이 쓰는 것을 듣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YS는 일단 맘에 들면 편애하는 스타일이다. 초선 의원이었던 손학규를 집권당 대변인에 기용하더니 보건복지부장관까지 시켰다. 국회의원 3선에 장관, 경기도 지사. 이 모든 ‘꽃가마 행렬’은 그의 정치적 스승 YS의 덕이었다.
YS는 지난해 손학규가 막걸리 마시며 민심 대장정을 해도 지지도가 오르지 않자 “학규는 우째 뜨지 않노?”하며 안타까워했다. 순진한 YS다. 손학규는 YS가 김대중(DJ) 전 대통령 말만 나오면 넌더리를 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햇볕정책을 계승해야 한다”는 둥 수상한 냄새를 풍기다가 떠나버렸다. 손학규의 정치적 스승이 DJ로 바뀐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인의 변신술에 대해서도 충고했다. “선인(善人)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 목적 달성을 위해 악(惡)을 행하지 않을 수 없을 땐 단번에 바꾸어버리는 편이 효과적이다.” 왜? “급격한 변화는 그전 방법으로 얻어놓은 지지를 채 잃기 전에 새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마키아벨리! 5%대에서 헤맸던 손학규의 지지도가 많게는 10%까지 올랐다는 것 아닌가.
마키아벨리가 환생해 손학규에게 충고한 것 같다. “정치란 인륜도 어길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 14년 동안 정치를 했다는 손학규를 따라 단 한명도 탈당하지 않았다. 왜? 그가 누구인지를 알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