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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미사어구를 동원해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사실상 ‘부추겼던’ 범여권이 안면몰수로 돌변했다. 손 전 지사의 결단은 높이 평가하지만 정치적 연대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범여권 내부의 차기 대선경쟁과 맞물려 손 전 지사와의 차별화에 나선 모습이다. 손 전 지사의 향후 행보에 대한 견제심리도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1일 저녁 CBS 라디오 시사프로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 “손 전 지사의 탈당이 겉으로는 ‘경선룰’과 관련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나라당에서 쫓겨났다”면서 향후 손 전 지사의 정치적 협력 문제에 대해 “함께 하기 힘들고 국민도 낯설어 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김 전 의장은 또 “개인적으로 손 전 지사와 절친한 친구고 재야민주운동을 함께 한 동지였지만 중요한 역사적 고비에서 선택을 달리했다”면서 “손 전 지사는 민자당에 참여했고 나는 정통야당인 민주당에 참여했다. 또 80년 신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켰을 때 나는 국민속으로 갔고 손 전 지사는 공부하러 영국으로 갔다. 이런 역사적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범여권의 대선경쟁을 감안한 차별화를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김 의장은 손 전 지사가 거취문제로 막판 고심을 하고 있던, 불과 3일전인 19일만 해도 손 전 지사와의 민주화운동 친구․동지였던 점을 내세우면서 손 전 지사의 결단을 촉구했었다. 당시 김 의장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내에서, 바깥에서 보기에는 합리적 보수가 설 자리가 주변화되거나 숨막히는 상태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손 전 지사의 고민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까지 내보였다. 불과 3일만에 ‘돌변’(?)한 것이다.
이와 함께 “(손 전 지사가)탈당을 해서 대통합신당을 만드는데 참여한다면 동참할 수 있다”며 손 전 지사의 결단을 강력하게 촉구했던, 열린당 탈당파 천정배 의원도 당초 입장을 180도 확 바꿨다.
천 의원도 이날 저녁 같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한나라당 내에서 승산이 없으니까 원칙을 저버리고 나왔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경선에 참여해서 대선후보가 되려고 하려다가 그게 막히니까 나온 것”이라면서 손 전 지사와의 정치적 연대 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천 의원은 특히 “지금 한나라당은 잘 나가고 있다. 지지율이 높고 대선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후보가 되려고 했던 분이 느닷없이 나갔으니까 이건 개인적 욕심에서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고 힐난하면서 “상대진영에서 거의 사령관이 될 뻔 했던 분이 갑자기 우리 진영에 와서 총사령관이 되겠다고 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손 전 지사가 우리쪽 후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돼선 안 된다고 본다. 우리 유권자나 지지자들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백의종군하면서 한나라당 집권을 막고, 민생평화개혁의 대통합신당을 만드는데 함께 한다면 매우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될까 의문”이라면서 “손 전 지사가 독자적으로 창당해서 대권후보가 되려고 한다든가, 우리쪽에 함께 해서 대권후보가 되려고 한다면 혼선이 빚어지고 교란 요인이 될 것이다. 국민이나 우리를 지지했던 분들이 좀 헷갈릴 것이다. 비전이나 정책에서부터 헷갈릴 수 있다. 한나라당 비슷한 정당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강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종전 입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내보였다.
이에 ‘예전엔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요구하지 않았느냐’고 사회자가 묻자, 천 의원은 “그건 좀 다르다”며 “우리가 신당을 만드는데 비전과 정책을 공유한다면 손 전 지사같은 분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대권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노선과 정책에 반대해서 나왔다면 명분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대선 레이스에서 승산이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범여권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범여권의 차기대선주자가 될 지도 모를 손 전 지사에 대한 사전 경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는 동시에 손 전 지사의 ‘제3지대세력’이 명확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일단 시험대에 올려놓고 두고 보겠다는 것인데, 섣부른 손 전 지사와의 연대 문제는 탈당 명분에 대한 국민적 설득이 절실한 상황에서 자칫 대권만을 쫓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는데 따른 적잖은 고민도 담겨 있는 모습이다. 아울러 김 전 의장과 천 의원의 이런 태도는 범여권의 개혁진영을 대표하는 이들이 자칫 손 전 지사의 등장으로 범여권의 개혁진영의 지지 분산을 우려한 측면도 감안돼 있는 상황으로도 비쳐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