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에 ‘정운찬 신드롬’이 불고 있다.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자나 깨나 입에 달고 다니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차기 대통령은 정운찬’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참동안을 정 전 총장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나면 항상 남는 결론은 ‘나도 정 전 총장을 잘 안다’는 자신과 정 전 총장과의 친분 과시다.

    또 정 전 총장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있는데, 바로 한나라당내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또 다른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약방의 감초’식으로 간헐적으로 나오는데,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말투다.

    차기 대선구도를 ‘정운찬-이명박’으로 보고 이 전 시장을 향해 온갖 집중 포화를 쏟아내고 있는데, 정 전 총장과 비교해 이 전 시장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데 온통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 전 시장의 경제관에서부터 재산문제, 심지어는 외모와 목소리까지 이 전 시장의 모든 것을 비롯 일거수 일투족이 도마위에 오른다. 이런 얘기들은 주로 한잔의 술이 도는 식사자리에서 나온다.

    #사례1 = 범여권의 한 의원은 9일 여의도 모처에서 일부 기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성경구절을 인용,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다”면서 이 전 시장을 겨냥했다. 발언의 핵심은 이 전 시장이 재산이 많다고 하는데, 그 돈을 의미있는 곳에 써본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한강에 뛰어들 결심까지 하면서 어려운 과정을 보냈던 사람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그 돈을)썼을 때 의미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정 전 총장은 부인이 ‘정치권에 가면 어디서 월급이 나오냐’더라”면서 정 전 총장은 재산문제에 있어서의 청렴함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토목회사, 건설회사에서 경험한 경제실력은 구시대의 이미지일 뿐”이라면서 “정 전 총장은 경제실력을 갖춘 전문가이며, 정치에도 때 묻지 않는 사람이 아닌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 전 시장보다 오디오 비디오 다 낫지 않느냐. 이 전 시장은 목소리도 외모도 영…”이라고 했다.

    #사례2 = 열린당을 집단탈당한 모 의원이 지난달 일부 기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선 이 전 시장과 정동영 전 열린당 의장이 한 행사에 함께 참석해, 서로 악수를 하기 직전의 장면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 전 시장이 정 전 의장을 알아보고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장면인데, 일부 네티즌들이 그 사진에 말풍선을 달아 놓았다는 것이다. 말풍선엔 이 전 시장이 ‘내 지지율을 줄테니, 니 얼굴을 달라’는 것이었다. 정 전 의장의 말풍선에 ‘?’가 찍혀있다고 하는데, 일순간 오찬 자리를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 의원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히 “(이 전 시장의 외모가) 좀 그렇긴 해…”라고 말했다.

    #사례3 = 중도개혁통합신당모임 김한길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이례적으로 정 전 총장과 만났던 사실을 밝히면서 당시 만남에서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기자들의 질문에 엉뚱하게도 자신과 정 전 총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선 ‘정 전 총장이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면 어느 시기가 적당하느냐’고 질문한데 대해 김 의원은 “그 분도 저를 볼때마다 농담인지는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그러면 서로가 좋아하는 사이네요’ 하고 제가 가볍게 화답하는 그런 관계”라는 다소 ‘생뚱’맞은 답변을 내놨다.

    정 전 총장과의 만남 당시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정 전 총장과의 친분 과시에 ‘열’(?)을 올렸다. 통합신당모임의 한 의원도 “정 전 총장과, 정치권 내 인사들 가운데 비교적 수월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민주당의 김종인 의원과 우리모임의 김한길 의원”이라고 살짝 귀띔했다.

    범여권의 이런 분위기는 정 전 총장 띄우기에도 모자라, 정 전 총장에 대한 신드롬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범여권의 기대와 달리 정 전 총장은 현재 1~2%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범여권의 한 의원은 “정 전 총장이 나오면 상황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정작 이같은 범여권에서의 정 전 총장 과시에 대해 정 전 총장은 어떻게 바라볼지 의문이다. 정 전 총장은 가볍게 와인 한잔 정도의 ‘술실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범여권에선 ‘너도나도 정 전 총장과 술친구’(?)라는 사람들이 나돌기도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