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이명박에게 묻는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왜 김영삼 김대중을 국민이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을까? 30여년간 정치판에서 시궁창의 오물을 뒤집어 써 왔던 YS와 DJ. 수도 없이 태풍을 몰고 오는 검증의 먹구름을 뚫고 대통령에 당선된 진정한 배경은 어디에 있었을까?

    유권자가 그들을 선택한 것은 그들에 대한 ‘부채 의식’에 짓눌렸기 때문이었다. 민주화 투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YS와 DJ, 그래도 한 번씩 대통령이 되어 넘어가야 되는 것 아닌가. 김종필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국민이 그에 대해서는 부채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선택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역감정과 정면대결한다며 부산에서 낙선을 거듭한다고 하니까. 여기에서 대선 후보를 바라보는 유권자의 이율배반적인 평가 잣대가 작용한다. 모든 걸 버리는 자기 희생의 후보에겐 검증 욕구보다는 부채감이 더 크게 작용한다. 검증은 대충 하고 넘어간다. “장인이 좌익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여자를 버려야 합니까” 하는 식으로. 반대로 부채감을 덜 느끼는 후보에겐 잔혹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댄다. 이회창의 경우처럼.

    이런 논리에서 이명박은 혹독한 검증을 피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대세론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하고 넘어가더라도 나중에 밖에서 뭔가 사소한 것 하나만 터뜨려도 난리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황제 테니스’ 사건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국민이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할 인생 역정이 없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그의 최대 약점이다. 어릴 때 풀빵장사 하고 신문배달 했다는 것? 누구나 그땐 가난했다. 그러나 현재는 부자 아닌가. 샐러리맨의 영웅, 국회의원, 서울시장에 이어 지지도 1위의 대권 주자라는 승승장구의 이력은 국민에게 얼마나 깨끗한지 검증하고 싶은 ‘가혹행위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이명박은 “상대방 후보에게도 검증을 요구하지 않겠다”고만 하면 검증의 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착각이다.

    이명박은 먼저 자신의 재산을 국민에게 헌납할 용의가 있는가. 남의 재산을 가볍게 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도 그의 재산은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담스러운 규모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 의지가 투철하다면 재산까지 사회에 헌납할 결의가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리는 자기 희생이 없으면 진정성을 보일 수 없다. 그래야 이명박에게 국민이 ‘부채 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저 정도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결의라면? 산업화 시대를 살며 오물을 묻힐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검증의 독배’를 스스로 마셔야 한다.

    이명박은 자신의 지지도에 대해서도 착각하는 것 같다. 경제를 잘 안다니 국민이 대통령 시켜 살림 형편 좀 나아졌으면 하는 심리 때문 아닌가.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중앙차로제 만든 것으로 청와대까지 질주할 수 있다고 보는가. 토목건설의 달인에 대한 매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경제 대통령한테 덕 보겠다는 심리는 여당 후보가 나올 때까진 지속될지 모른다. 그러나 여당 후보가 결정되면 한나라당 집권을 생리적으로 반대하는 ‘반(反) 한나라당 고정층’과 여권에서는 거세게 묻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 재벌 순위 1위인 대기업 회장을 대통령시키면 경제를 더 잘할 것 아닌가’ 하고.

    이명박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인 이명박’과 ‘대선 주자 이명박’과의 도덕적 차이점은 무엇인지. 도덕성 검증이 거칠게 펼쳐지는 것이다. 왜 이명박은 부자가 됐나? 검은 축재였는가, 아니면 샐러리맨의 신화적 재테크 결과였는가? 이명박이 기업인으로 돌아간다면 물어 볼 필요도 없다. 선거를 왜 하는가? 검증 없는 선거라면 여론조사로 대치해도 된다. 이미 서울시장 선거 때 검증을 다했다고? 서울시장과 대통령이 같은가.

    이명박은 자신을 둘러싼 시중의 의혹에 대해 먼저 본인 입으로 조목조목 아니면 아니고, 기면 기다고 말해야 한다. 지지도가 3위로 떨어질 각오로. 국민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검증 하나도 자신이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