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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내 '후보검증'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19일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겨누어 주목된다. 조씨는 이날 홈페이지에 '자기 팀 선수의 핸들링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박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씨는 "지금 박 캠프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향해 벌이는 폭로공세는 극히 이례적"이라며 "경선과정에서 (바깥의 여당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서로 알게 돼) 이런 내부정보까지 까발리기 시작하면 정치도의를 넘어서는 이전투구가 돼 결국은 여당을 유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처럼 검증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면서 "검증을 하는 주체가 아니라 경선의 경기장에 나온 선수이지 심판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포츠 경기에 빗대 "한국선수가 심판이 보지 못한 동료 한국선수의 핸들링을 심판에게 고발하면 어떻게 되는가"며 "스포츠에도 의리가 있고 정치에도 의리가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조씨는 "가족, 회사, 정당 등 모든 조직은 공동체"라며 "공동체의 기본 생리는 자기편을 감싸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대동단결해도 이길까 말까한 한나라당이 무슨 여유가 있다고 분열로 치닫는가"고 반문한 뒤, "경선과정에서 무차별 폭로전을 치르고 나서는 경선결과에 승복하기도 어렵고 손을 잡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고 말해 경선 후의 상황을 경계했다.
▲다음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올린 글 전문<자기 팀 선수의 핸들링을 고발한다?>
버거운 김정일 세력에 대해선 미소를 보내면서 만만한 자기편을 더 물어뜯는 것보다 비겁한 행동은 없다.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와 그 지지자들이 李明博 전 서울시장에 대한 소위 검증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친북좌파 종식을 염원하는 사람들 속에선 이것이 여권의 공세를 사전에 차단하고, 거짓선동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줄 것이라는 긍정론이 있다. 반대로 김정일-노무현-김대중 세력이 反한나라당 통일전선 구축을 해가고 있는 마당에 한나라당이 敵과 同志를 구분하지 못하고 自中之亂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自滅해갈 것이라는 비판론도 강하다.
지금 朴槿惠 캠프가 李明博씨를 향해서 벌이는 폭로공세는 극히 이례적이다. 도전자 입장에 서 있는 野黨은 내부경쟁을 할 때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정책을 놓고 비판을 하되 인간말살의 치명적인 폭로는 하지 않는다. 같은 黨內에서 경쟁하다가 보면, 또 同志로서 함께 일하다가 보면 바깥의 여당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서로 알게 된다.
競選과정에서 이런 내부정보까지 까발리기 시작하면 정치도의를 넘어서는 泥田鬪狗가 되어 결국은 여당을 유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자기들끼리의 경쟁은 주로 노선과 정책을 놓고 벌인다. 한 당에 몸담은 사람들끼리 돈과 여자 문제를 폭로한 예는 기억나지 않는다.
朴槿惠씨는 李明博씨처럼 검증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검증을 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는 競選의 경기장에 나온 선수이지 심판이 아니다. 물론 선수도 경기중 부정이 있으면 고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선수가 자기편의 부정을 고발하는가?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팀이 스위스 팀과 경기중일 때 어느 한국선수가 심판이 보지 못한 동료 한국선수의 핸들링을 심판에게 고발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한국선수는 고발정신이 투철하다고 상을 받을까? 의리 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먹을까? 스포츠에도 의리가 있고 정치에도 의리가 있다. 의리는 무슨 위대한 덕목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이다. 심판이나 관중의 입장에서는 핸들링을 한 선수를 고발하는 것이 맞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동료선수의 핸들링을 고발하는 것까지 권리와 의무로 규정하고 축구를 한다면 경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심판, 관중, 선수의 역할이 뒤죽박죽되어버린다. 검증은 기자들에게 맡겨도 된다.
正義는 中庸과 공평성을 요구한다. 상대방의 부정과 非理만 유리알처럼 드러내면서 아무리 사소한 잘못까지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과 자기편의 그것은 숨겨놓는다면 正義는 구현되지 않는다.
朴槿惠씨가 공평성을 보장받으려면 그는 자신과 다른 경쟁자와 敵들에게도 李明博씨에게 적용하는 잣대를 들이대어야 한다. 김정일 노무현 김대중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등에 대한 잣대는 李明博씨에 대한 잣대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朴槿惠씨는 자신과 관련된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 한 점 숨김 없는 자기고백을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국가이익의 관점에 서야 한다. 한국의 국가이익이 가장 침해받고 있는 분야는 안보이다. 김정일의 핵무장, 이를 사실상 허용한 노무현-김대중-친북세력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해요인이다. 망가진 경제는 고칠 수 있으나 한번 망가진 안보는 회복이 어렵다. 李明博類의 안보를 무시한 경제제일주의는 허구이다. 경제를 담는 그릇인 안보에 구멍이 생기면 경제가 샌다. 한나라당의 黨內 경선은 대한민국의 이 위해요인을 제거하는 데 가장 합당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競選과정 자체가 친북좌파세력을 종식시키는 과정이라야 한다. 후보검증이 도를 넘으면 친북좌파세력을 종식시키기 전에 한나라당의 경쟁자를 종식시킴으로써 친북좌파세력과의 本選게임에 나가기도 전에 힘을 다 빼버리게 된다.
가족, 회사, 정당 등 모든 조직은 공동체이다. 공동체의 기본 생리는 자기편을 감싸는 것이다. 敵과 싸울 때는 더욱 그러하다. 개미사회도 그렇다고 한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힘 센 집단이 출현하면 권력투쟁을 많이 하는 개미들은 일단 대동단결하여 그 공동의 적을 물리친 후에 다시 내부투쟁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생명체나 조직의 기본 생리이자 윤리인 것이다. 이 윤리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해산한다.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敵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 실패한 경험이 많다. 연개소문 아들들은 당과 신라와 싸우는 것보다 형제들끼리 싸우는 데 더 열중하다가 자멸했다. 임진왜란 때 豊臣秀吉의 조선침략 가능성을 탐지하려고 일본에 파견되었던 사신들은 자신들이 속한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상반된 보고를 올려 宣祖가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했다. 丙子胡亂 때는 斥和派와 主和派가 원수처럼 싸우다가 피할 수 있는 전쟁을 불렀다. 개화기 때는 청, 러시아, 일본이라는 외세에 공동대처하지 못하고 親淸, 親日, 親露派로 분열하여 亡國의 길로 치달았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大同團結해도 이길까 말까한 한나라당이 무슨 여유가 있다고 분열로 치닫는가? 朴槿惠 캠프는 김정일 세력을 主敵으로 보는가, 李明博씨를 主敵으로 보는가? 선의의 경쟁자를 敵보다 더 미워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金大中씨가 金鍾泌씨와 손잡고, 盧武鉉씨가 鄭夢準씨와 손잡았기 때문에 정권을 차지했다. 그렇다면 朴槿惠씨와 李明博씨가 손잡는 것은 더 쉬워 보인다.
경선과정에서 무차별 폭로전을 치르고 나서는 競選결과에 승복하기도 어렵고 손을 잡을 가능성은 더욱 낮다. 한국인들은 막가는 싸움을 하게 되면 원수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동료를 원수로 보고 敵을 친구로 여기게 된다. 이 때문에 黨內경선에서의 공방전은 정책, 이념, 전략과 같은 공적인 분야에 한정시켜야 하는 것이다. 돈 문제,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니더라도 벼르고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먼저 터뜨려 뇌관을 미리 제거한다”는 말도 그럴 듯 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뇌관이 상대에게 치명상이 되어 미리 유력한 대통령감을 죽여버릴 수도 있다.
당사자들끼리 하는 검증은 검증이 아니라 폭로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자체 검증 결과를 믿을 사람도 없다. 검증은 언론 등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제 3자가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비극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제3의 기관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할 언론, 지식인, 그리고 검찰까지도 권력과 이념에 따라서 줄을 서는 바람에 그 어떤 검증도 국민들을 만족시키고 납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은 투표 결과가 검증의 최종 결과보고서가 될 것이다.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은 이미 검증을 받은 사람들이다. 국회의원과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는 과정에서 1차 검증을 받았다. 이 검증을 통과한 사람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세 살만 넘어도 털면 먼지가 난다. 이 풍진세상을 살아서 어른이 된 사람에게 완전무결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진공관 속에서 아무 일도 안하고 살았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聖職者를 뽑는 일이 아니다. 4900만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유롭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줄 국가경영자를 뽑는 일이다. 도덕성 검증은 능력검증, 이념검증, 정신감정과 함께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때로는 도덕적인 반역자보다는 부도덕한 유능력자가 나을 수 있다.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시장과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은 경험칙상 국민 평균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었다고 봐야 한다.
두 사람의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李明博 서울시장은 서울시 財政의 흑자전환,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혁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朴槿惠 대표도 2004년 4월 총선과 작년의 지방선거를 지휘하여 자유진영의 교두보를 지켜냈다. 두 사람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권자들이 “누가 한나라당 후보로 뽑히든 무조건 밀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국가적 人材이다. 국가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 지도자이다. 두 사람은 우리가 아껴야 할 자원이다. 두 사람이 泥田鬪狗로 서로 치명상을 주어 사라진다면 자유진영에서 과연 그만한 인재를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人材를 깎아내리는 데서는 쾌감을 느끼나 그 人材를 보호하고 밀어주려는 생각은 너무 약하다. Followship, 즉 따르는 자질이 있어야 Leadership(지도력)이 생길 것이 아닌가? 따르는 사람이 없는 데 혼자 뛰면 고립된다. 우리는 좋은 지도자감을 발견하면 그를 우상숭배하거나 깎아내리는 일만 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의 자세로써 감싸고 밀어주어야 한다.
李明博, 朴槿惠 두 사람은 救國의 방도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北核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전교조의 親北反美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빚더미 국가財政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가고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등을 놓고 경쟁하여야 한다. 朴槿惠씨는 李明博씨보다는 김정일 세력을, 李明博씨는 朴槿惠씨보다는 김정일 세력을 더 비판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버거운 김정일 세력에 대해선 미소를 보내면서 만만한 상대방을 더 물어뜯는 것보다 비겁한 행동은 없다.
김정일 세력과 싸워서 지지율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 경쟁자의 약점을 폭로하여 지지율을 올리려고 한다면 自滅하든지 共滅할 것이다. 이는 김정일 세력을 도와주는 自害행위이다. 2007년 대한민국의 대명제는 親北좌파 종식과 국가정상화를 이룩하여 자유통일을 넘어 一流국가 건설로 달려가는 길을 여는 일이다. 이런 큰 싸움을 앞두고 장수들끼리 상호비방전에 몰두한다는 것은 포위된 진주성에서 장수들끼리 돈 문제, 여자 문제를 놓고 싸움박질하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朴槿惠 캠프에서 李明博씨에게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가 바로 朴씨를 향해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 대책이 있는가? 자기 눈의 티는 보이지 않고 상대방 눈의 티는 대들보처럼 보이는 게 인간이다.
朴正熙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참모들이 경찰의 생활사범 단속을 완화해주자는 건의를 하자 화를 내면서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져도 좋으니 그래선 안된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
흔히 보통사람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기업인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정치인을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비유한다. 朴 대통령은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보통사람들을 激動시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이다.
朴槿惠씨가 직접 나서서 李明博씨의 약점을 폭로하는 일은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에 속할 것이다. 다행히 朴 전 대표가 거기까지 간 것 같지는 않다. 의혹에 대한 판단은 의혹에 대한 투명한 조사가 이뤄진 다음 해도 늦지 않다. 李明博씨의 의혹에 대한 검증은 기자들에게 맡겨놓는 것이 어떨까? 기자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그런 일을 하도록 월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朴槿惠, 李明博 주변 인물들 가운데 이런 싸움을 말리지 않고 붙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이 모시는 인물을 죽이는 짓이다. 문제는 그런 충동질의 말들이 항상 달콤하다는 점이다.
인간은 큰 싸움을 못할수록 작은 싸움은 잘 하게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