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전 김한길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23명이 집단 탈당을 강행함에 따라 열린당은 한마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당장 원내 제1당 자리가 붕괴되면서 원내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한 데다가, 14일 치러질 전당대회 개최마저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이미 예견됐던 집단 탈당이었던 만큼 그 충격파가 적다고 애써 태연한 척 하기도 하지만 당 지도부는 긴급회의를 열고 집단 탈당 사태와 전당대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열린당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상황에 내몰린 모습이다.

    집단 탈당 의원, “홀가분 하다”

    “홀가분하다. 대통합의 밀알이 되고자 결단했다”(박상돈 의원)

    이날 집단 탈당을 단행한 의원들은 탈당을 공식 선언한 직후, 후련한 모습을 내보이면서도 향후 대통합신당 논의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내보였다. 이들은 우선 이번 주말 1박 2일의 일정으로 워크숍을 갖고 대통합신당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계획이다. 김한길 의원은 “천정배 염동연 의원 등 앞서 탈당한 의원들을 포함해 이번 주말에 워크숍을 갖고 교섭단체 명칭이라든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원칙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탈당한 의원들과의 합류 여부에 일단의 가능성을 열어 논 모습인데, 이번 주말이 노선과 정책 측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탈당파 의원들의 행동통일 여부는 물론 향후 대통합신당 추진을 위한 첫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당의 체계를 갖추는 창당보다는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변재일 의원은 “당의 체제를 갖추는 창당은 외부인사들의 영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대통합신당으로 나간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집단 탈당과 관련, 전병헌 의원은 “(오늘의 집단 탈당은 우리가)대통합신당을 주도하거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선도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며, 많은 고민과 결단이 필요했다. 용광로 신당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향후 충청권 의원 등 열린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에 대해서도 “(오늘의 집단 탈당에 대한)시중의 반응에 대해 주의깊게 살펴보겠다”면서 향후 연쇄 탈당 흐름을 전망했다.

    우상호 대변인 “집단 탈당 의원들이 포기한 것은 기득권 아니라 당적” 비난

    이들의 집단 탈당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긴급회의를 열고 집단 탈당 사태와 향후 2․14 전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상호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대통합신당에 대한 당내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속도와 방법상의 이견을 이유로 탈당하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라면서 집단 탈당 의원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집단 탈당한 의원들의)고민과 충정은 이해하지만 열린당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분들이 탈당한다고 해서 열린당과 아무 상관없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집단 탈당 의원들이 포기한 것은 기득권이 아니라 당적”이라고 힐난했다.

    우 대변인은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이 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고 겨울의 밤이 늦을 수록 곧 봄이 온다는 신호”라면서 “따뜻한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인고의 세월을 각오하고 인내할 것”이라고 침통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열린당은 이번 집단 탈당 사태로 133석에서 110석으로, 원내 제1당 자리를 한나라당(127석)에 내주게 됐다. 당장 국회 운영위원장 선출은 물론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도 다시 논의해야 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입법 추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또 내주 치러질 2.14 전당대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전당대회 개최를 위한 대의원 구성을 놓고 집단 탈당한 의원들의 지역구 당원협의회 및 대의원 구성 문제가 난관에 부닥친 모습이다. 더불어 집단 탈당 이후 연쇄적인 탈당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사실상 전당대회는 무산될 공산이 커지면서 당이 급속히 와해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지도부급 인사들은 일단 전당대회의 개최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내보였다. 탈당한 의원들이 속해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당원협의회 등 전당대회 개최를 위한 대의원 구성이 원만치 않을 경우 해당 지역 대의원은 전체 재적 대의원 수에서 제외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당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들의 집단 탈당은 이미 예견됐던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당초 30~40명 선이 될 것으로 전해지더니 오히려 생각보다 적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이날 집단 탈당을 강행한 의원들은 탈당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7시부터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실에 모여 최종 의견을 조율했었다. 오전 9시 30분경에는 김한길 전 원내대표와 강봉균 전 정책위의장을 필두로, 이강래 조일현 의원등이 좌우에 나란히 포진한 채 비장한 얼굴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채 30분도 되지 않아 집단 탈당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다음은 탈당 의원들과의 일문일답

    -- 앞으로 계획은.
    ▲(최용규) 이번 주말에 1박2일 워크숍을 갖고 큰 그림을 그려서 여러분께 제시하겠다. 지금 당장은 임시국회에 충실해서 임시국회가 헛바퀴를 도는 일이 없도록 진력하겠다. 

    -- 추가 탈당하는 의원들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들은 언제 합류하나.
    ▲(전병헌) 여러 가지 사정과 일정을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서는 밝히지 않는 게 도리다. 일정한 기간을 갖고 추가 합류할 의원들의 참여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앞서 탈당한 천정배 의원과도 함께 하나.
    ▲(김한길) 천정배 의원과 염동연 의원 등 앞서 탈당한 의원들과는 이번 주말에 워크숍을 함께 하기로 했다. 워크숍에서는 교섭단체 명칭, 앞으로 교섭단체가 지켜가야 할 원칙 등이 심도있게 논의될 것이다.

    -- 워크숍에는 먼저 탈당한 의원들 모두 참여하나.
    ▲(전병헌) 임종인 의원과는 교감이 이뤄지지 않았고 나머지 5명과 하게 될 것 같다.
     
    -- 충청권 의원들 가운데 추가 합류할 의원이 어느 정도 될까.
    ▲(변재일) 홍재형, 이시종, 오제세 의원 등이 2.14 전당대회를 지켜보고 결심할 것으로 생각한다. 

    -- 앞으로 교섭단체 구성만 하는 건가 창당을 하는 건가.
    ▲(변재일) 교섭단체 구성만 한다. 당을 만드는 것 보다는 교섭단체 구성에 그치는 게 제3의 외부 인물들이 들어오기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통합신당으로 간다.
     
    -- 앞으로 모임은 어떻게 되나.
    ▲(전병헌) 매일 오전 8시30분에 전체 의원들이 모여서 의견을 조율하겠다.

    -- 민주당과는 사전 대화가 됐나.
    ▲(변재일) 연락한 적 없다. 

    -- 여론조사를 보면 탈당 반대 여론도 많은데.
    ▲(전병헌) 우리의 기본 전제는 선도적으로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지 정치권에서 주도권을 갖겠다는 게 아니다. 열린당 중심으로 통합신당을 하면 국민의 지지를 모아내기 어렵다. 당내 사수파나 일부 그룹이 동의하지 않지만 한나라당과 맞설 제 세력이 뭉쳐야 한다. 여론을 보면 통합신당 지지도와 바람이 열린당 지지도보다 2∼3배 높다. 

    -- 중도실용 노선을 추구하는 것인가.
    ▲(전병헌) 우리의 목표는 탈당이 아니라 통합신당으로 가려는 것이다. 확고부동하게 중도개혁 신당에 모두 동의했다. 우리는 범민주평화개혁세력이 모이는 터전이다. 

    -- 제종길 의원도 향후 구성될 교섭단체에 함께 하는 건가.
    ▲(제종길) 일단 탈당은 같이 하는 게 맞다고 봤다. 그러나 교섭단체에 참여할지 여부는 확정하지 않았으며 주말 워크숍을 통해 논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