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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대한민국 다시 우향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세상일이 내 마음처럼 풀리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럴 때 위안을 얻는 방법 중 하나는 상황이 더 안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는 일이다. 가령 요즘 나라 돌아가는 사정이 걱정스럽게 느껴진다면 3년 전 일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2004년 4월 17일자 조선일보를 들춰 보자. 3면 머리기사 제목이 ‘권력 대이동, 진보세력의 국회장악’이었다. 기사 첫 머리엔 이틀 전 총선결과에 대한 정치학자의 촌평이 나온다. “정치판 전체가 왼쪽으로 움직인 느낌이다.” 진보 내지 좌파로 분류되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당시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 합계가 51%였다. 보수우파인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득표율 합은 39%였다. 2000년 총선 때는 우파 정당의 득표율이 52%, 좌파 정당의 득표율이 36%였다. 4년 만에 한국 정치판의 오른쪽, 왼쪽이 정확히 뒤바뀐 것이다.
총선 얼마 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앞으로 20년, 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5년 주기 대선에서 최소한 4차례 연속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좌파 전성시대가 열린다는 건 좌파의 일방적인 생각만도 아니었다.
시장경제 전도사로 불리는 공병호씨는 “앞으로 10년간 우파 정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10년 동안 한국은 왼쪽으로 갈 것이다. 진보주의 시대, 소위 좌파정권들이 계속 집권하는 지형도가 그려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앞으로 20년 내에 민노당이 집권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민노당 정치인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발언이었다.
‘좌파의 늪’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들다. 좌파 정책은 중산층을 몰락시켜 빈곤층으로 내몬다. 그렇게 생겨난 빈곤층은 ‘평등한 세상’이라는 좌파 구호에 솔깃해 한다. 좌파정책은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확대된 빈부격차는 다시 좌파 정권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좌파는 계속 정권을 재창출하지만 나라는 골병이 든다. 남미 여러 나라에서 되풀이돼 온 악순환 구도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들은 3년 전,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좌파들은 남미형 성공담을 쓰지 못할 전망이다. 얼마 전 갤럽 조사에서 한나라당 ‘빅 3’ 대선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75%였다. 국민 넷 중 셋이 다음 대통령감을 우파정당에서 찾고 있다는 뜻이다. 12월 대선의 승자를 지금 점치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이다. 그러나 얼치기 좌파 흉내를 냈던 정치인은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위험한 예측은 아니다.
1949년 건국한 중국과 1947년 독립한 인도는 처음엔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그 길은 빈곤에서 빈곤으로 이어지는 미로였다. 중국은 1989년부터 시장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도는 1991년에 자유주의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중국과 인도는 각각 10%, 8%의 고속성장을 하며 세계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좌파의 미몽에서 깨어나 ‘우향우’를 하기까지는 40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는 다른 국민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민주화와 산업화를 불과 50년 만에 성취했다. 이번엔 남들이 40년 동안 빠져 있던 좌파의 최면에서 불과 3년 만에 깨어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말 지혜롭고 현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지혜롭고 현명한 국민이라도 혼자 힘으로 ‘좌파의 늪’에서 그렇게 신속하게 탈출할 수는 없다. 노무현 정권이 좌파집권의 해악을 최단 시일 내에 확실히 깨닫게 해줬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와 국민 전체가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됐다. 아마도 이것이 노무현 정권이 남길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