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칼럼니스트 변상근씨가 쓴 '훌륭한 인물은 대통령 못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훌륭한 인물은 왜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가? 영국 옥스퍼드의 민법학자 제임스 브라이스 경(卿)이 1888년에 제기한 유명한 의문이다. 19세기 말 미국정치를 관찰하고 쓴 그의 저서 '미국연방'은 기억하지 못해도 '훌륭한 인물은 왜 대통령으로 뽑히지 못하는가(Why Great Men Are Not Chosen Presidents)'라는 이 책의 제8장은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 그는 정당체제를 들었다. 정당체제는 훌륭한 인물을 포용하지 못한다. 능력이 탁월할수록 견제하는 적이 많고, 까마귀 싸움판에 '백로'가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정당의 벽이 높고 험하다.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내세울 때 첫 번째 고려는 당선 가능성이지 지도력이나 국정운영 능력은 뒷전이다. 당시까지 그저 그런 인물이 훌륭한 대통령이 된 것은 에이브러햄 링컨 정도라고 했다.

    20세기 들어 예비선거제가 도입되고 일반 유권자 당원이 후보선출에 참여하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지명도가 높고 선거자금 확보능력이 탄탄한 후보들이 판을 휩쓸 뿐 조직과 돈줄이 없는 후보는 '실탄'이 떨어져 도중하차하기 일쑤다. 정당의 벽을 넘는다 해도 후보검증의 혹독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말이 검증이지 약점과 구린 곳을 부각시켜 '인격살인'도 서슴지 않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대선보다 당내 경선이 더 처절하고, 이 과정에서 책략가와 승부사 아니면 그저 그런 무난한 인물만이 살아남는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고건 전 총리가 출마를 포기한 주된 이유도 '정당의 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지율 한 자릿수 후보들의 난립 속에 여권은 '완전 국민경선제'를 추진 중이다. 미국의 예비선거를 본뜬다고는 하지만 소위 '국민후보'는 예비선거와는 사뭇 다르다. 정당에 대한 귀속감이나 의무감에 상관없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골라 국민을 상대로 바람몰이하는 인기투표나 다름없다. 능력과 자질보다는 '바람의 아들'이 득세하고, 취임 후 자신을 당선시킨 정당을 내팽개쳐 여당이 '실종'되는 배신도 각오해야 한다.

    민주화 투사들이 시류를 타고 대통령이 된 뒤 국정운영에서 실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쟁경력은 화려하지만 국가관리자로서의 경험과 경륜이 없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투사로서의 전투적 성향과 독선으로 편 가르기와 판 뒤집기, 벼랑의 정치를 일삼는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가 그랬다.

    민주화가 쟁취되면 유능한 국가경영자에게 물려주고 투사들은 노병처럼 사라지는 것이 순리다. 민주정부만큼 운영이 어려운 정부 형태도 없기 때문이다. 정권을 투쟁의 보상이나 전리품쯤으로 알고, 집권 후 한풀이에다 다음 정권까지 창출하려는 데에서 비극은 싹튼다. 남아프리카의 만델라나 체코의 하벨은 국정운영을 총리에게 맡기고 '도덕적 권위'로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국정 난맥과 혼돈을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치부하고, 여론은 자주 바뀐다며 여론을 역주행하는 무책임과 뻔뻔스러움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대통령은 물론 만능이 아니다. 대통령이 작아지고 실패하는 데에는 국민들의 과잉 기대도 한몫한다. 조지 워싱턴의 판단력에, 제퍼슨의 총명, 링컨의 천재, 루스벨트의 정치적 지혜, 거기에 케네디 같은 상큼한 젊음까지 갖춘 수퍼스타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만들기'를 쓴 시어도어 화이트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이성이 아니고 본능과 신뢰'라고 했다. 또 누구를 뽑기보다 누구를 뽑지 않으려는 투표행태가 엉뚱한 인물을 당선시켜 국민들이 '사서 고생'하는 경우도 생긴다.

    트루먼은 대통령의 리더십을 '국민들이 꺼리는 것을 스스로 하도록 설득하고 이를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또 피터 드러커는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이 리더십이고, 일을 옳게 하는 것이 경영'이라고 했다. 성공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기술이 국가경영이고 사닥다리를 어디에 걸치는지는 리더십 소관이다.

    대통령이 지도자도, 유능한 국가경영자도 못 될 때 나라는 방황하고 국민들은 참담해진다. '잃어버린 5년' 얘기도 고개를 든다. '훌륭한 인물은 왜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 '못난 국민은 못난 대통령밖에 가질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면 지나친 자조(自嘲)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