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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정동영과 김근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의 힘을 빌려 대권까지 잡은 ‘직업적 승부사’다. 그가 말 사고나 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갖고 있는 무서운 노림수를 놓쳐 버린다.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노가다 어휘’가 가장 파괴력이 높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왜 그런 험한 말을? 부질없는 지적이다. 왜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1일 느닷없이 초대 고건 전 총리의 기용을 “실패한 인사”라고 비난했을까. 고건이 반발 조짐을 보이자 닷새 뒤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 대통령을 동네북처럼 두드리면 섭섭하고 분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직업 공무원’ 고건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고건은 노 대통령을 향해 거세게 반발했어야 했다. ‘고건 중심 통합신당’에 대한 명백한 거부 의사 표명 아닌가. 고건의 고민은 시작됐다. 지지도 하락? 막대한 정치자금 때문에? 건강 때문에? 신당 추진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공무원 특유의 복합적 판단체계를 갖고 있는 고건은 그런 요인들을 놓고서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의 ‘비토’에 맞선다는 게 고건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고건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게된 진정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건이었다면 현직 대통령의 비난을 거꾸로 받아치며 올라섰을 것이다. 결국 고건은 노 대통령의 말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기(氣)가 약한 사람은 애초부터 정치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열린우리당은 큰 배다. 바깥에서 선장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바깥 선장론’은 지지도 2%를 넘지 못하는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당 의장에게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대선 후보로서 이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있다는 뜻 아닌가. 그럼에도 노 대통령과 맞붙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심약하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고건…. 정동영과 김근태의 ‘운명’도 노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 가만히 두어도 ‘고건 후폭풍’에 떼밀려 2선후퇴나 백의종군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노 대통령은 꽁꽁 숨겨놓은 ‘다크 호스’를 막판에 극적으로 가시화시키며 이들의 ‘명예퇴진’을 유도하려 할 공산이 크다. ‘큰 배’를 띄우는데 정동영과 김근태가 장애물이 된다면 거침없이 몰아낼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인제를 제치고 노무현을 점지했던 방식 그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