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혀왔던 고건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여전도회관 14층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고 전 총리의 팬클럽 등 지지자 50여명과 100여명의 취재진들이 얽히고 설킨데다가, 고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을 만류하기위해 기자회견장을 ‘봉쇄’하면서 기자회견장이 일대 아수라장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고 전 총리는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승강기 안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아이러니하게도 지지자들에게 ‘쫓겨’(?) 몸을 피하기 바빴으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결정하면서’라는 A4 용지 한 장의 보도자료로, 그간의 대권레이스 행보를 마무리하게 됐다.

    '지지자들에게 쫓기는 고 전 총리' 

    공교롭게도 이날 기자회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은 고 전 총리의 지지자들.

    ‘우민회’ ‘민우산우회’ ‘고건닷컴’ ‘고건과 사람들’ 소속의 고 전 총리 지지자 50여명은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14층 승강기 앞에서부터 고 전 총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지자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 의도와 뜻을 묻고 대선 불출마를 만류하겠다는 것.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승강기에서 고 전 총리의 모습이 보이자, 지지자 중 몇몇이 고 전 총리를 가로막고 승강기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뒤섞이면서 한바탕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고 전 총리를 태운 승강기가 1층과 14층에 오르고 내리기를 2차례 반복하더니 급기야 기자회견장은 전쟁터가 됐으며 고 전 총리는 황급히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건물을 빠져 나갔다. 고 전 총리는 지하주차장에 내려와서도 이들을 피하기 위해 승용차까지 뛰어야만 했다.

    고 전 총리를 놓친 지지자들은 황급히 서둘러 기자회견장으로 올라와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했으며 고 전 총리 캠프 사람들을 향해 “도대체 어떻게 총리님을 모셨길래 불출마 선언을 하느냐. 이 개XX들”이라면서 욕설섞인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지난 토요일에 (고 전 총리 지지) 사무실 개소식을 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강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입장이 담긴 보도자료가 배포됐으며, 고 전 총리 지지자들은 “배포된 보도자료는 고 전 총리의 사인이 없기 때문에 공식자료가 아니다. 중상모략된 자료”라면서 강력 항의하면서 배포중인 보도자료를 빼앗아 찢는 등 '완력'을 행사하기도 했었다.

    동시에 예정된 고 전 총리의 기자회견은 전격 무산됐다.

    이와 관련, 고 전 총리측의 김덕봉 공보특보는 “고 전 총리가 오늘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불출마 선언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지지자들의 기자회견장 봉쇄로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전해왔다”면서 이같은 사태에 대한 고 전 총리의 입장을 설명했다.

    김 특보는 또 지지자들에 대해서도 “고 전 총리가 조만간 지지자들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야인으로 돌아갈 것" 

    김 특보는 고 전 총리의 전격적인 대선 불출마 선언 배경에 대해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를 떠나 이것이 국민의 선택을 바르게 하는 기회가 아니냐. 빨리 내리면 내릴수록 혼란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총리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김 특보는 일일이 취재기자들과 악수를 나눴으며, “힘 내시라”는 일부 기자들의 말에, 다소 떨리면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그간 고맙다”고 연신 되내었다. 기자회견장이 아수라장판이 되는 상황을 보면서 김 특보는 한 구석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김 특보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기자들과의 만남'(?)에 막판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모습을 보였다. 김 특보는 “고 전 총리는 일체 정치 활동을 안하고 야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고 전 총리는 지방에서 2~3일 쉬었다고 올 생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 전 총리의 향후 일정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고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신년 초부터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온갖 ‘설’들이 정치권에 나돈 지 불과 10여일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는데, ‘좌고우면’으로 대표되는 고 전 총리의 그간의 행보를 감안할 때 매우 의외라는게 정가의 반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