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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 <12월19일 이런 ‘대이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매우 ‘불길한 징조’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연초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이명박의 비상(飛翔), 박근혜의 후진, 손학규 원희룡의 나락으로 나타난 결과를 놓고 ‘그러면 경선에서 승자 한 사람만 뽑으면 정권 교체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는 낙관론을 펴는 것은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하는 대권 경쟁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메이저 이명박과 박근혜 간의 ‘빅2 구도’로 재편된 데 대해 주목해야 한다.
빅2가 지지도를 70%까지 싹쓸이하고 있는 양자 대결 구도로부터 김영삼(YS), 김대중(DJ) 간의 피튀기는 양김 구도가 1980년대 초 서울의 봄, 1987년 민주화 시절 국민과 역사에 죄를 지었던 ‘단일화 실패’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이명박의 독주는 ‘승자 독식의 교만’을, 박근혜의 수세는 ‘뒤집기의 오기’를, 마이너 손학규 원희룡에겐 공정성 시비를 내세운 ‘일탈의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알맞은 구도로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이는 정권교체를 위해 결코 희망적인 현상이 아닌 것으로 독해(讀解)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럴까? 이명박과 박근혜가 올 6월 경선을 대선 본선으로 착각하는 구도로 밀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백의종군하면 나머지 한 사람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하늘을 치솟는 국민의 분노 때문에 당선이 무난하다고? 큰 그림은 그렇게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이명박은 박근혜와의 지지도 차이를 벌려 나갈수록 대세론으로 경선 무용론을 압박하거나, ‘당 밖 지지도’ 반영을 50%로 한정한 경선 룰을 고치자고 더 치고 나올 공산이 크다. 박근혜가 이를 받아들일 리도 없고 지지도 반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달라붙을 것이다. 이 과정의 ‘골육상쟁’에서 빅2는 양김씨의 전철을 밟아 경선을 아예 피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경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선거 결과를 예측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첩첩산중을 헤쳐 빅2간 치열한 경선이 이뤄만진다면 21세기 한국 정치사에 기록될 최고의 흥행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경선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정작 대선 판도를 결정짓는 것은 경선 이후 한나라당의 ‘화학적 화합’ 여부임을 이 시점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화학적 화합’은 후보를 누구로 뽑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 1997년 이회창이 아닌 다른 인물이 나왔더라도 경선 후보간 화학적 결합만 이뤄졌다면 정권을 뺏길 이유가 없었다. 병역문제 때문에? 한나라당이 단합만 했다면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탈락한 후보들은 국회의원 회관에 모여 고스톱을 치거나 뒤에서 이회창의 낙마를 기다렸다. 1971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는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맞서 정권을 가져올 수 있었지만, YS 진영과의 분열로 패배했다. DJ의 역전극에 의해 패배한 YS는 DJ 연설반에서 연설조차 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비서’ 김덕룡과 함께 지프에 확성기를 싣고 다니며 외로운 백의종군을 했다. 경선이 분란의 씨앗이 되는 것이 정치 현실이다.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탄생, 김대중·노무현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최대의 요인은 상대당의 분열인 것이다. 설령 야당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다 해도 여당은 ‘토막 야당’과 싸우게 된다. 여권은 누구로든 단일화만 이뤄낼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 12월19일 대선일 밤12시 무렵, 여당 후보가 당선되는 ‘대(大)이변’의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권이 수모를 무릅쓰고 정계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들은 자신들에 대한 지지도가 ‘개인의 사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경선에 임해야 한다. 국민이 이런 지지를 보내는 데에도 실패하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만다. 상대방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종말 게임으로 몰아가지 말고, 권력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당내 정기(正氣)를 세워야 한다. 손학규와 원희룡의 참여가 의미있다고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시도는 야당 사상 처음이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12월19일 ‘대이변’만은 기막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