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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던 지난 15일 저녁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10여명과 중진급인 한 의원이 여의도 모처에서 만났다. 이 중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잦은 독대를 할 정도로 두터운 관계였으므로 이날 만남의 주된 화제는 정계개편 문제를 비롯한 최근 현안 등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중이 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초선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 중진 의원의)말을 전하기가 적절치 않다”며 만남 자체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도 “이날 만남은 인위적인 (노 대통령)배제는 안되고 자연스럽게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 문제 등 에서 애써 노 대통령과 ‘각 세우기’에 나서지 않아도 노 대통령 배제는 필연적이므로 ‘괜한 당내 혼란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실제로 당내 대체적인 분위기도 이제는 노 대통령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상황이다. 한 호남 출신 의원은 정계개편 등 정국현안 등의 문제에서 "노 대통령을 따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면서 "노 대통령은 그럴 처지도 아니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이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정된 당청간의 모습이 이같은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정계개편과 관련한 통합신당 논의가 대세이고 통합신당 추진을 위한 ‘명분 찾기’를 감안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노 대통령과 당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해 통합신당의 명분을 확고히 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관측이다.지난 15일 전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건만 하더라도, 청와대가 전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강행처리를 준비했던 열린당이 ‘청와대의 임명을 기다리겠다‘며 청와대에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로 한발짝 물러선 것도 이런 기류가 당내에 전반적으로 퍼져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인사문제를 놓고 청와대를 향한 불만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회 파행과 여론악화라는 부담까지 떠안으며 무리하게 강행처리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사실상 당․청간의 갈등 양상을 피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역으로는 '청와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무언의 시위를 했다는게 정가의 시각이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는 '전효숙 사태'는 인위적으로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아도 정치현안 논의에서 노 대통령이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상황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 입장으로선 이참에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입장이고, 청와대는 전효숙 사태로 자칫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이 현실화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당과 청와대 어느쪽도 선뜻 전효숙 사태 해결에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당과 청와대가 총체적인 '전효숙 딜레마'에 빠진 모습인데,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로 야기된 전효숙 사태가 노 대통령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꼴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전효숙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론’도 제기됐다. 조경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전 후보자 개인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언제까지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을 것이냐”고 말했다. 그러나 자진사퇴 역시, 향후 정국운영 주도권 문제를 감안했을 때 당과 청와대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어 부담이다.집권여당인 열린당은 전효숙 사태를 청와대와의 관계를 대등하게 만들려는 포석으로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