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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비서실장 이병완, 그의 출세기는 극적이다. 그는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이병완이 노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01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이라는 허세(虛勢)의 자리를 지킬 때였다. 노 대통령은 대권 후보 티켓을 노리고 있었으나 거들떠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 풍찬노숙하고 있었다. 가끔 노 대통령을 만나고 했던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진 모른다. 노 정권 탄생. 386 실세들을 따라 청와대 비서관 자리를 챙길 수 있었다. 초기엔 맡은 자리도 불안정해 청와대 직제개편 때마다 이름을 바꿔 자리를 전전했다. 하지만 처세에 관한 한 달인이었다. 386들의 눈에 들자 노 대통령도 신뢰했다. 그러다 아마추어 국정 운영에 대한 여론의 공세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386들은 자신들이 숨을 수 있는 대형(大兄)을 찾았다. 청와대 홍보수석에 기용된다.
이때 서울 강남권에 52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노 대통령은 국회에 나가 “강남 불패(不敗)는 없다. 대통령 불패!”라고 외칠 때였다. 재운에다 관운이 또 터지기 시작했다. 386들은 “차라리 우리가 비서실을 장악하자”며 그를 무동 태워 비서실장에 밀어 올렸다. 때마침 정권창출 최대 공신인 이해찬 국무총리가 3·1절 골프 파문으로 낙마했다. 노 대통령의 풍찬노숙 동문들인 문재인 이정우 김병준 등 청와대 1세대 고참들도 386들의 등쌀에 밀려 들어오고 나갔다. 이병완이 권력 2인자로 자리잡게 된다. 처세, 관운, 시류의 3박자를 맞춰온 것이다. 이것이 노 정권의 권력세계다. 이번 부동산 파문에서도 추병직 이백만 정문수와 같은 하수급들만 경질됐고 이병완은 살아남았다. ‘강남 불패’를 패러디하면 ‘이병완 불패 신화’인 것이다.
왜 추병직은 장관에서 떠나는 날 실없는 듯한 웃음을 지었나. ‘부동산 충견’ 역할을 맡기다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니 옷을 벗긴다? 국회도 민란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마당에 국정을 주도해온 비서실장부터 책임져야 할 사안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 이백만이 자기 판단만으로 “지금 집사면 낭패 본다”고 썼다? 비서실장이 모르고 있었다? 강남권 아파트값 불패에 편승해 목돈을 챙기고, 역시 권력에서도 불패이니 더 이상 할 말이 남은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