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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 구상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이 당․청간 충돌 양상으로까지 비화됐다. 고질적인 당․청간 갈등이 정계개편 논의와 맞물려 불거진 모습인데, 열린우리당 안팎에선 ‘봉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권 문제가 당․청 충돌의 요인이 된 데다가, 충돌 양상의 기저에 여권 정계개편 구상과 맞물린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문제가 깔려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당 안팎에서는 김한길 열린당 원내대표가 3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안보경제 위기관리 체제로서의 내각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개각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을 돌이킬 수 없는 당․청 충돌의 서막으로 보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널리 인재를 구해서 드림팀을 짜고 남은 임기 동안 여기에 집중해서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김 원내대표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발언은 향후 정계개편 구상을 염두에 두고 노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김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이 외교안보라인 등 개각과 관련해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니라원론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원내 공보부대표 노웅래 의원의 ‘해명성’ 설명이 있긴 했지만, 이것이 김 원내대표의 즉흥 발언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사전에 김근태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인 데다가 그 뜻이 여러 경로를 통해 노 대통령에게도 전달됐다는 측면에서 여권의 복합적 상황이 고려된 발언이 아니냐는 것이다. 당 안팎에서는 지금이 당과 노 대통령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시점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당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통합신당 추진쪽에 당내 다수 의원들의 의견이 결집되는 상황에서 ‘통합신당 추진’에 부정적 입장인 노 대통령의 결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는 분석인데, 신속하고 원만한 정계개편 논의를 위해 노 대통령의 탈당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는게 당 안팎의 해석이다.
김 원내대표가 위기관리 내각구성 등 인사권 문제를 들고나온 데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과 김병준 전 부총리건을 비롯해 그간 인사문제를 둘러싸고 당내 불만이 쌓여있었으므로 ‘노 대통령과의 각 세우기’에서도 명분이 있는데다가 당내 공감대도 쉽게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계개편에 대한 의원들끼리의 미묘한 의견차이도 이를 통해 봉합하려 했을 것이란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또 직접적으로 노 대통령을 겨냥하기보다는 인사권 문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과 선을 그을 여지를 남겨놨다는 것이다.
실제 김 원내대표의 주장은 노 대통령이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으로 정무특보단을 꾸린 데 이어, 측근을 중심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재결집하려는 움직임이 알려진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이같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때문에 김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은 정계개편 등 정치현안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개입 의지를 차단하려는 당내 의중이 반영됐다는 관측이다.이와 관련, 친노 직계 이화영 의원은 이날 오후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당의 지도급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는 신당창당론에 대해 “지금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 적합한 것인가 의문이다”면서 “지금 전당대회를 하지않고 통합을 위한 어떤 기구를 만들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면서 불편한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한편, 노 대통령은 10․25 재보선 직후 자신과 가까운 한 의원을 청와대로 불러 “작은 꾀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1000만명을 어떻게 작은 꾀로 움직일 수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에는 노사모 회원들과 만나 지방선거 직전 염동연 전 사무총장과 만난 사실을 공개하면서 "나는 민주당과의 통합에 절대 동의할 수도 없고, 동의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죽읍시다"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사실상 당내에서 힘을 얻은 민주당 등과의 통합론에 부정적 의중을 드러낸 것인데, 당장 당의 위기관리 내각구성 요구에 노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