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한화갑의 ‘DJ 우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에게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정치를 지속시켜주는 ‘우산’이자 그 우산을 날려버릴 수 있는 ‘태풍’이다. 호남인의 ‘DJ 집착 정서’가 강하게 존재하는 한. 때문에 한화갑은 ‘DJ 우산론’과 ‘태풍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한화갑은 10·9 북 핵실험 이후 장고(長考)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19일, “북한에 아무리 햇볕을 쪼여도 고맙다는 말을 못 듣고 있다. 북한을 민족적 차원에서 다룰 상대가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한미동맹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고 포용정책 책임론, 선(先) 한미동맹 중시론을 명쾌히 개진했다. 이 무슨 경천동지할 소리?

    역시 한화갑에 대한 호남의 역풍은 거셌나보다. DJ에 대한 어깃장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는 23일 광주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DJ의 햇볕정책 외엔 다른 정책이 없다”며 ‘민주당 = 햇볕정책 계승당’이라고 못박았다. 물론 한미동맹론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대화 회피론과 북한 책임론을 동시에 내놓는 말 장난을 했지만. DJ가 28일 목포를 방문한다는 것 아닌가. DJ 우산에서 벗어나보려 했다가 태풍이 두려워 움츠릴 수밖에 없는 호남 출신 정치인의 현실. 한화갑의 왔다갔다를 탓하기에 앞서 표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그가 안쓰럽다.

    정치학자 장훈(중앙대 교수)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현실을 객관의 눈으로 이해하는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 이 빈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적으로 부정직해지면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우기는 것이다. DJ가 “햇볕정책에 무슨 죄가 있는가”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적 정직성을 보였던 한화갑조차 물러서는 모습에서 과연 한국 정치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한화갑과 애국적인 호남인들은 DJ 우산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나라를 구할 것인가, 햇볕정책을 구할 것인가.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DJ에게 노벨 평화상을 반납하라는 국민도 없지 않은가. 호남은 이제 DJ에 대한 부채감에서 해방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으면 호남은 DJ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위상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