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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할 말 한 YS'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의 핵실험 와중에 10일 열린 청와대 오찬 회동을 전하는 한 장의 사진. 전두환 김영삼(YS) 김대중(DJ) 등 전직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둘러앉아 있는 모습은 1980~9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국민에겐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상극(相剋)의 종합판도 이런 종합판이 없다.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압축이랄까. 전 전 대통령의 맞은 편에 앉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YS의 모습에서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이 되던 1983년 5월18일 전두환 정권 타도를 외치며 23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던 사건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YS는 대통령이 되자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내 버렸다. 그랬던 YS와 전 전 대통령이 마주 앉아 있다?
왜 YS가 청와대 회동에 참석했는지는 그가 노 대통령과 DJ를 향해 쏟아낸 말들을 보면 알게 된다. “북 핵실험은 6·25 이후 가장 큰 위기다.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정도의 사안이다. 공개사과해야 한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 해도 현직 대통령에게 ‘사퇴’까지 언급하는 것은 보통의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8년7개월 동안 4조5800억원의 돈을 퍼주어 마침내 북한이 핵을 만들게 됐다. 분해서 잠을 못잤다.” DJ에게는 “재임 때 김정일 만난 뒤 나보고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 김정일이 미군 철수 주장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안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거짓말을 하거나 김정일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무슨 평화가 왔느냐”고 몰아붙였다. YS에게 환란(換亂)의 책임은 천형처럼 따라다니지만, 국가 안보가 벼랑에 몰린 절망적 상황에서 YS의 불벼락과 같은 충언은 그나마 한 줄기 소나기처럼 가슴을 적셔 온다. 허물 없는 역대 대통령이 있는가.
YS 시절엔 안보 불안만은 없었다. 김일성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뒤통수를 치자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김일성은 사망할 때까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YS가 국민을 대변해 노 정권의 폭주(暴走)를 막는 데 헌신한다면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재평가되지 않을까. 대한민국이 망망대해를 헤매는 것과 같은 불안한 이 시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