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지난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당 위기 수습에 나선지 3개월여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당내 반발이 당 지도부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확산조짐을 보이는 데다가, 이들 문제를 놓고 당내 ‘개혁 실용’ 진영으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으면서 졸지에 ‘샌드위치’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의 미흡 등을 문제 삼으면서 김 의장의 리더십 문제도 제기할 태세여서 이래저래 김 의장의 처지가 곤혹스럽다.여당 의원들이 참여한 ‘한미 FTA 위헌소송’은 김 의장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김 의장은 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여당 의원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것은 중대한 문제인데 이처럼 중대한 결정을 하면서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고 부적절한 일”이라면서 “신중하게 앞으로 처신해 줄 것을 각별히 요구한다.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단호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오히려 위헌소송 참여 의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공식적으로 경고 조치까지 취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을 잘못했다고 경고를 하느냐” “당론은 정해져 있느냐”는 등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당 안팎에서는 “김 의장 말이 먹히겠느냐” “이런 사태까지 온 것은 김 의장이 자초한 것 아니냐”는 등의 말도 터져 나왔다.특히 이번 ‘한미 FTA 위헌소송’에 참여한 의원 대다수가 김 의장계로 분류되는 재야파 의원들인 데다 이들 중 일부는 김 의장의 당내 의견 수렴이 미흡하다며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면서 김 의장의 당내 입지도 흔들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개혁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측은 “재야파 내부에서도 김 의장을 동지적 관계로만 생각할 뿐, 지도자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3개월여의 김 의장의 행보를 보니 차기 대선주자감은 아니더라는 판단을 했다는 귀띔이다. 의원들 분위기도 ‘할 말 있으면 김 의장보다 김한길 원내대표에게 하라’는 상황이다. 김 의장의 당내 입지가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김 의장에 대해 의장을 맡은 직후 당 정체성 확립 측면에서 상당한 기대를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김 의장이 내건 재계와의 ‘뉴딜(사회적 대타협)’ 정책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한 친노그룹의 의원은 “김 의장이 연일 '똥볼'만 차고 있다”면서 “고작한다는 게 대기업을 위한 뉴딜이냐”고 했다. 한나라당인지 열린당인지 분간못할 정책을 내놔 정체성만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뉴딜 정책을 추진할 당시 당내에서는 의총을 열어 의견 한번 물어봤었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일색이다. 결국 김 의장의 그간 행보가 이같은 당의 모습을 자초한 만큼 ‘김 의장이 영이 설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김 의장과 김 의장 측근들의 ‘판단 미스’도 언급된다. 김 의장의 그간의 행보를 놓고 당내 반발이 거세지 않았던 것은 밑바닥 지지율 등 당 위기상황 해소가 급선무였기 때문이지 김 의장이 잘해서가 아니었는데, 김 의장 주변에서 이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 쪽에서 고작 한다는 말이 ‘(당내 의원들이) 너무 몰라준다. 뉴딜 밖에는 없다’는 것인데, 현실 진단이 너무 잘못되도 한참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극단적으로는 “김 의장을 내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당을 맡을 의장으로 시키면 아주 중립적으로 잘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결국 여권 내 어느 누구도 김 의장을 차기 대선 주자 선출 과정에서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한미 FTA 위헌소송’ 문제와 함께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놓고 ‘개혁'․'실용’ 진영으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으면서 졸지로 ‘샌드위치’가 돼버린 점도 김 의장에게는 부담이다. ‘민생제일주의’를 내건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법안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서는 한나라당과의 협상이 중요한데 사학법 재개정 문제 등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가 당장 눈앞의 걱정으로 다가온 모습이다. 김 의장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유의 장고(長考)로 이른바 미적지근한 ‘햄릿’식 행보로 나서겠다는 것인지, 당안팎에서는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더불어 여권 내 ‘제3의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후보들이 물밑 행보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만들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김 의장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의장은 오히려 당내에서 “철학이 뭐냐”는 소리까지 듣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