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태길 학술원 회장, 차인석 서울대 명예교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 차하순 서강대 명예교수, 이영호 성균관대 명예교수, 나성린 한양대 교수, 민준기 경희대 명예교수, 김명수 외국어대 교수, 이석희 전 중앙대 명예총장, 안광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옥렬 숙명여대 명예교수, 배호순 서울여대 교수, 이주영 건국대 교수, 강태훈 단국대 교수, 장오현 동국대 교수, 윤영오 국민대 교수, 강경근 숭실대 교수, 조병윤 명지대 교수, 김영진 인하대 명예교수, 우철구 영남대 교수, 이은호 청주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전·현직 대학교수 등 학계인사 600여명과 변호사 등 지식인 총 722명은 5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추진은 중단돼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국제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 역사학회, 경제학회, 국제경제학회, 한국철학회, 한국정책학회 등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분야 주요 학회의 전·현직 회장 40여명이 동참했다. 이번 성명에는 한국 학계의 원로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학문 이외의 문제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인사들이 다수 참여해 눈길을 끈다.

    대학과 학계의 원로들이 이번처럼 광범위하게 시국현안에 발언한 것은 4·19혁명 때인 1960년 4월 25일 전국 27개 대학 교수 300여명이 가두시위를 벌인 이후 처음이다.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성명을 발표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간선제인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이때는 전국 48개 대학 1500여명의 중진 교수들이 직선제 개헌 수용을 요구하는 개헌서명에 참여했었다.

    성명은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문제를 안보 효율성이 아닌 주권 또는 자주라는 정치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며 정치 문제화하고 있다. 지난 50년간 대북 억지력의 가장 확실한 근간이었던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 체제를 흔들면서 자주의 깃발만을 치켜드는 것은 위험한 모험주의”라고 했다. 성명은 안보문제인 전작권 문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전작권을 정치문제인 것처럼 포장해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정치 선동수법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성명은 “미일연합사가 창설 채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은 한국 안보를 약화시키면서 군사적으로 미·일 양국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한미동맹과 한미연합사 체제는 동북아에 안정적 질서가 형성될 때까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5월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를 하나로 묶어 동북아 거점사령부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 상황에서 작전권 단독행사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면 주한미군은 미·일 공동사령부 지휘를 받게 되면서 미·일의 안보이해 관점에서 운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성명은 또 “우리가 시장경제체제를 발전시켜 선진국 진입을 내다볼 수 있게 된 것도 공고한 한미방위동맹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작권 단독행사는 2020년까지 수백조원의 자주국방 건설비를 필요로 하는 등 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고 했다. 전작권 단독행사는 단순히 우리 안보를 흔들 뿐 아니라 우리의 번영의 토대를 허물면서 막대한 경제부담까지 지운다는 것이다.

    4·19혁명 때의 대학교수단 가두시위로부터는 46년 만에, 87년 직선제 개헌요구 서명으로부터는 19년 만에 이 나라 정치학계, 역사학계, 철학계, 경제학계 등 인문·사회분야를 대표하는 원로와 현역교수 등의 지식인들이 다시 한목소리를 냈다.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학계 원로들의 성명에는 아무런 정치적 파당심이 없다. 오로지 나라의 안보와 번영의 기틀이 흔들리는 데 대한 걱정과 근심이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한 번만이라도 겸허하게 마음의 귀를 열고 이 우국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