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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청설모와 ‘자주국방’>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어느 가을 날. 노무현 대통령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걸어서 관저로 퇴근하다가 다람쥐보다 크고 공격적인 속칭 청설모(청서·靑鼠)를 발견한다. 노 대통령이 묻는다. “청설모가 우리 토종 다람쥐가 아니지요?” 어느 누가 그런 지식을 갖고 있을까. 노 대통령은 내내 청설모 때문에 다람쥐가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다가 관저 대문을 들어서며 “청와대에서 청설모를 다 몰아내면 우리 토종 다람쥐들이 돌아오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경호실은 가을 내내 청설모를 사냥했다고 한다. 노 정권 출범 2년동안 사관(史官)처럼 대통령의 ‘판단과 생각’을 기록한 이진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의 전언이다.(‘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 중).
“누군가 식사 도중 섣불리 ‘대서양 변에서 게 잡는 방법에는…’이라고 하면 노 대통령은 ‘무슨 게입니까’라고 물은 뒤 게의 종류와 서식지 등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를 쏟아냈다. 히말라야산맥의 높이까지 정확히 말하는 대통령 앞에서 수석보좌관들은 곧잘 뜨악한 표정을 짓곤 했다.”
들꽃 이름에서부터 ‘터보 라이터’의 작동 원리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의 ‘불쑥 질문’에 가장 능숙한 인물은 안희정과 이광재였다. 정치인의 수준을 말해주는 거울은 평생 살아온 배우자가 아니다. 참모 진영의 면면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의 비서진만 봐도…. 속이기 어렵다. 젊은 시절 배우자 선택에는 격정이 더 크게 작용하지만 다 성장한 정치인이 참모를 선택하는 데는 인재를 볼 수 있는 이성적 힘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바다이야기’에 대해 “도둑 맞으려니까 개도 안짖는다고, 어떻게 이렇게까지”라고 개탄했다. 도박장이 전국에 ‘바다’를 이루었는데도 전혀 몰랐다? 권력의 생리상 가능한 일이다. 모르는게 없는 박학다식한 대통령 앞에 직언할 수 있는 파수견(把守犬)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코드를 맞춘 대가로 벼락출세한 인물들의 거대한 철옹성. 그 안에서의 충성 경쟁.
한국이 미군 역할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전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것. 청설모를 몰아내 ‘토종 다람쥐 세상’을 만드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충언이 나왔을까. 자주국방의 신기원이라고? 아예 대문을 열어놓고 더 큰 도둑을 기다리는 형국이라면 대한민국은 어찌 해야 하는가.





